BBC와 유튜브 파트너십 그 너머

 

김동원(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강사)

 

 

지난 1월 21일 BBC와 유튜브가 전략 파트너십을 발표했다. 한국에서 대표적인 공영방송 모델로 삼아왔던 BBC가 유튜브(구글)를 주력 플랫폼으로 택했다는 사실은 아직 초기지만 여러 추정과 예상을 낳고 있다. 지난 몇 년 간 Ofcom과 DCMS는 미디어 이용 환경 조사, 지상파 송출의 효율성 검토, 미래 시청자(4-15세 인구)에 대한 고려, 공영방송서비스(PBS) 콘텐츠 진흥에 관련된 다양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BBC - Ofcom・DCMS - 유튜브・BBC 간 협상과 조정이 이뤄지면서 BBC와 유튜브 각자가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랜드마크 딜’이 이뤄졌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의 공영방송 관계자나 연구자들은 BBC가 유튜브로부터 무엇을 얻어냈는지, 그리고 공영방송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을지에 관심을 두고 있다고 보인다.

 

지상파에서 IP로: 거대한 전환

 

 

그러나 BBC와 유튜브의 전략 파트너십 배경에 추진되고 있는 지상파 송출 종료라는 거대한 전환에는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여기에는 ‘플랫폼’(platform)에 대한 오래된 관념이 있다. Ofcom의 2024년 보고서 「Future of Distribution」에서는 플랫폼을 “지상파TV(DDT), IPTV, 위성, 또는 케이블과 같은 특정한 전송(distribution) 방식”으로 정의하고 있다. 플랫폼만큼 정의가 어려운 용어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잠정적 정의의 핵심은 소비자・이용자・시청자라는 수요측 규모의 경제를 토대로 하는 거래의 매개(자)라는 점이다. 두 행위자 집단 이상의 내부와 외부 간 네트워크 효과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은 충분히 확보한 잠정적 유효수요를 토대로 교통, 유통, 임대, 콘텐츠 등 어떤 상품과 서비스 시장에도 뛰어들 수 있다. 

그러나 BBC와 마찬가지로 대개의 방송사에게 플랫폼은 콘텐츠의 전송 경로(Channel)로만 여겨진다. 이러한 오해는 오랫동안 지상파 방송의 플랫폼과 네트워크 인프라가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지상파 송출과 직접 수신은 상당한 규모와 비용의 인프라를 요구하는데, 이는 그 수용자(시청자)가 어떤 가입 절차도 거치지 않는 국가 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다. 이 불특정 다수라는 수요측 규모의 경제는 방송사가 구성한 것이 아니라 가시청 가구라는 수신 환경의 산물이었다. 따라서 방송 송출 인프라와 플랫폼은 구분되지 않았다.

플랫폼과 인프라의 구분은 ‘플랫폼 경제・노동・자본’라는 용어가 등장하면서, 영상 콘텐츠 부문으로만 보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OTT 서비스가 성장하면서 부각됐다(물론 케이블・위성・IPTV 방송이라는 오래된 플랫폼이 있었지만). 비교적 많이 알려진 사례는 넷플릭스와 SKT 간 망이용료 소송전이었다. 대개의 이용자들 뿐 아니라 방송 산업 종사자들에게도 스마트폰과 TV 화면에 뜨는 플랫폼 서비스(앱)에만 주목하지 이를 가능케 하는 유무선 통신망(초고속인터넷, 이하 IP망)은 사업자 간 거래와 경쟁 분야라고 생각한다. 그나마 IP망이 주목 받을 때는 대규모 가입자 정보 유출, 데이터센터 화재, 네트워크 일부의 장애로 카카오톡 등이 멈추는 경우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BBC와 유튜브 간 세부적인 제휴 내용만큼 그 사전 단계로 논의된 지상파 송출 중단 계획과 이행 과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디어 정책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플랫폼, 콘텐츠, 디바이스의 토대가 되는 통신 인프라는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나는 오래 전부터 비물질 노동, 디지털 부불노동, 이용자 지대라는 개념들을 대할 때마다 이를 가능케 하는 물리적 인프라에 대한 이해 부족을 지적해 왔다. 만일 한국에서 지상파 방송 송출 중단과 IP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시청자뿐 아니라 연구자들도 그리 관심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이들에게 이미 지상파 방송의 거의 모든 콘텐츠는 유튜브로 보고 있고, 어느 방송사에서 편성된 것인지 모른 채 넷플릭스로 드라마를 몰아 보는 일상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상파 송출 중단을 그저 방송사 문제라 치부할 수는 없다. 여기에는 글로벌과 로컬 수준에서 인프라 지대(Infra Rent)를 추출하는 불로소득 자본(rentier)이 재편할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의 거대한 전환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지상파 송출 방식과 통신 인프라

 

 

언론보도로 알려진 BBC와 유튜브의 파트너십 체결 내용은 Ofcom이 발행한 2025년 보고서 「Transmission Critical: The future of Public Service Media」에서 예견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PSB와 유튜브는 PSB 콘텐츠가 서비스에서 부각될 수 있고 공정 거래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구절이 포함된 PSB, 소셜 미디어와 VSP(유튜브 등), 정부와 Ofcom이 수행해야할 6가지 과제를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 제안이 나오기 한 해 전 발행된 2024년 보고서 「Future of Distribution」에서는 지상파-IP 전환의 구체적인 배경과 이행 계획이 담겨있다. 이 보고서와 그 밖의 자료를 참조하여 영국 유무선 통신 인프라를 살펴보자.

지상파 방송의 경우, 방송사 - 플랫폼 - 송출 인프라의 부문이 분리되어 있다. 플랫폼 부문은 디지털 지상파(DDT・Freeview), 위성망(Freesat), 그리고 2024년 출범한 Freely(OTT)의 채널 편성과 번호 관리, 기술 표준, 수신기 규격 등을 관리하는 Everyone TV가 담당한다. 국내에서 흔히 송출 공사라고 알려진 사업자가 이곳으로 BBC, ITV, CH4, CH5가 공동설립한 비영리 합작회사다. 엄밀히 말해 Everyone TV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아니라 지상파 송출 이전에 기본적인 규칙을 정하고 송출 인프라 기업과의 계약을 관리하는 곳이다. 지상파와 위성 신호의 송출을 담당하는 곳은 디지털인프라전문펀드사(DGI9)가 최대주주인 민간통신사 아키바(Arqiva)이다. 아키바의 주된 수익은 지상파 방송사로부터 받은 송출료다. 늘 그랬지만 아키바는 방송사들에게 전력 비용 인상을 근거로 송출료 인상을 요구해 왔다.

지상파 송출과 무관할 수도 있지만 PSB의 디지털 콘텐츠를 유튜브로 보는 시청자가 가입한 유무선 통신사업자 또한 살펴봐야 한다. 1984년 국영 British Telecom(이하 BT)는 민영화 이후 IP망의 경우 유선망과 무선망을 각기 다른 자회사인 Openreach와 British Consumer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2017년 O2(Virgin Media), CityFibre 등 경쟁사들이 Openreach와의 (도소매를 모두 한다는) 불공정 경쟁을 항의하자 Ofcom은 BT에게 이사회, 브랜드, 예산 및 인사 모든 부분에서 Openreach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후 Openreach는 독보적인 기간통신망 사업자가 됐고 오히려 BT의 ISP인 British Consumer에게 망을 도매로 제공하는 우위에 섰다. 한편 BT는 2002년 막대한 부채를 청산하기 위해 무선 IP망을 매각한 전력이 있다. 그러나 BT는 2015년 독일의 도이체텔레콤과 프랑스의 오랑주가 지분을 갖고 있던 이동통신사 EE를 125억 파운드에 인수했다. 이로부터 영국의 무선 IP망은 EE, Vodafone UK, Tree UK, O2 4개 사업자가 경쟁하고 있다. 

Openreach와 EE는 BBC iPlayer와 같은 방송사 스트리밍 서비스의 네트워크를 ISP(British Consumer, Sky, TalkTalk, Vodafone)를 통해 간접적으로 제공한다. 이들은 BBC가 공영방송이라고 해서 민영방송보다 저렴한 망이용료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BBC 등 PSB는 Arqiva에 지불해야 하는 지상파 송출료 뿐 아니라 Openreach에도 망이용료를 지불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Ofcom 2024년 보고서는 PSB의 낮은 비용 효율성을 지적하고 있다.

 

“방송사들은 현재 시청자 기대에 부응하려 하고 있으나, 인터넷, 그리고 오래된 인프라인 DTT를 통한 송출 비용은 모두 증가하고 있다. DTT에서 시청자가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수록, 그 매체에 남아 있는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비용은 시청자 1인당 기준으로 볼 때 비용 효율성이 지극히 떨어진다. 이에 따라 다수의 방송사와 DTT 이해관계자들은, 현재의 형태로 DTT를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경제적으로 타당하지 않게 되는 전환점이 도래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밝혔다.”(6)

 

방송통신 민영화의 종착점: 통신 인프라 자본의 불로소득

 

Ofcom은 2024년 보고서에서 무료 디지털 지상파 서비스인 Freeview를 2030년대에 걸쳐 단계적으로 종료하는 방안을 포함한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주무부처인 DCMS는 2년 후 최종 결정을 내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상황은 단순하지 않다. 유선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중 실시간 방송을 안정적으로 볼 수 있는 가입 가구(full FTTP)는 약 40~42%이며, 낮은 비율이지만 아예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 가구수는 150~280만 가구로 전체의 약 5~7%이다. 물론 영국의 총가구수 2,900만 가구의 99%가 인터넷에 가입해 있지만 모두가 고품질망을 쓰지는 않는다. Ofcom은 2024년 보고서에서 “초고속 및 기가비트 인터넷의 가용성은 아직 보편적이 아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여기에 Freeview 소속 방송사들이 구성한 Future TV Taskforce는 2035년까지 인터넷이 아닌 Freeview로 방송을 여전히 볼 가구는 180만 가구에 달할 것이라 추산했다. 고품질의 초고속인터넷 가입 가구 확대 여부와는 별도로 PSB의 IP 송출 전환은 몇 가지 난관을 거쳐야 한다.

  1. PSB의 IP 송출은 앞서 언급한 Openreach가 맡게 된다(이는 Aqiva가 순순히 사업을 종료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기간통신망뿐 아니라 가구에 최종적으로 도달(last mile)하는 망까지 보유한 이곳이 과연 지상파만큼 보편적이고 안정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장담할 수는 없다. 도리어 Aqiva를 상대해 왔던 Everyone TV는 Openreach를 대상으로 망이용료 협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망이용료를 내지 않더라도 Openreach가 지속적으로 인상해 온 통신요금은 앞으로 시청자들이 지불하고 있는 수신료에 대한 추가 부담으로 인식될 수 있다.

  2. PSB는 지금도 Freely나 iPlayer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CDN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PSB 모두가 실시간 편성과 다시보기 콘텐츠를 전송하기 위해서는 CDN 뿐 아니라 별도의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야 할 수도 있다. 이런 인프라 비용 부담을 덜기 위해 BT와 같은 통신 인프라 사업자에게 설비 및 운용을 위탁하는 방법도 있다.

  3. Ofcom의 2024년 보고서를 보면 Freeview의 종료 단계에서 PBS가 별도 IP망을 구축할 필요는 없지만 고령층이나 장애인 등의 이용 편의를 위한 별도의 인터페이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영국 IPTV 가입자들이 사용하는 하이브리드(Hybrid) 시청 방식처럼 PSB를 시청할 때 채널 선택, 프로그램 편성 정보 등을 쉽게 알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셋톱박스에 설치해야 한다. 

 

BBC와 유튜브의 파트너십에서 네트워크 인프라에 대한 구체적인 합의 사항은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위에서 파악한 인프라 환경으로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다. 이 추정은 PSB의 IP 송출 전환 과정에서 발생할 몇 가지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었다.

영국의 유무선 통신 인프라와 IP 송출 전환을 함께 고려하면 BBC와 유튜브의 파트너십을 통해 더 많은 시청자에게로의 접근이라는 이익 이상으로 양측 모두가 상당한 재정적 부담을 덜게 될 것이다. BBC는 Freeview 종료를 대비한 CDN 등 인프라를 유튜브를 통해 지원받을 수 있다. 게다가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받아 온 Openreach 망이용료를 유튜브를 통해 절감할 수 있다. 유튜브는 BBC의 고품질 콘텐츠 플랫폼을 자처하면서 꾸준히 논란이 되어 온 망이용료 미지급의 명분을 댈 수 있다. 요컨대 BBC는 IP 송출로 맞게 될 통신 인프라 사업자와의 협상을 글로벌 자본인 구글(유튜브)에게 맡기고, 구글은 망이용료 논란을 피하면서 정부 투자가 이루어질 초고속인터넷 품질 향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Freeview 송출 중단 결정이 내려지면 모든 PSB가 BBC와 동일한 파트너십을 유튜브와 맺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유튜브나 BBC보다 지상파 송출 종료의 혜택은 EE를 포함한 무선 IP망 사업자에게 엄청난 기회로 다가올 수 있다. 대개의 국가에서 지상파 방송 송출은 고품질 주파수 대역을 사용한다. Ofcom은 지상파 송출 종료로 남게될 주파수 대역을 무선 통신사업자의 5G, 국방, NHS, 교육용으로 쓸 수 있다고 밝혔지만 통신 사업자로부터 받게 될 막대한 주파수 할당 대가를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통신 사업자들은 지금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보다 지상파 대역에 더 적은 설비 투자 비용이 든다면 거리낌 없이 거액을 지불할 수 있다. 통신 네트워크의 특성상 초기 투자 비용을 회수하는 기간이 짧을수록 매출 중 영업 이익 비중은 높아지고 주주 배당은 더 후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유선 통신사업자인 Openreach가 보편적 서비스의 책무를 수행해야 할 수준만큼 지상파 대역을 할당받은 무선 통신사업자도 Ofcom으로부터 일정한 책무를 부여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상파 주파수 대역을 온전히 PSB를 위해 쓰는 경우와 달리 다양한 서비스 중 일부로 PSB가 포함된다면 책무 이행 약속은 장담할 수 없다. 

 

영국 PSB의 Freeview 종료 과정은 낡아버린 인프라-플랫폼의 종말이 아니다. 도리어 지상파라는 대표적인 공공재가 대표적인 불로소득 자본인 통신 인프라 자본에게 주어지는 거대한 전환의 예고편이다. PSB의 주파수 대역이 어떻게 쓰일지는 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 통신정책의 선례가 될 것이다. 문제는 지상파 송출 종료의 과정이 시청자들 뿐 아니라 연구자들에게 어떻게 인식될 지에 있다. 한국에서는 2012년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 종료 -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 시청자들은 혼란만 경험했다. 이미 직접 수신 가구는 줄어있었고 가시청 가구 중 71%가 이미 디지털로 전환된 유료방송을 보고 있었다. 지상파 디지털 전환은 유료방송 사업자들이 서로 가입자를 빼앗아 오거나 신규 가입자를 늘릴 호기가 됐다. 초고속인터넷 가입 가구수가 주민등록 기준 세대수의 1.5배에 달하고, 유무선 통신시장이 3사에 의해 과점된 한국에서 언제가 이루어질 지상파 송출 종료 과정은 영국보다 더 빠를 수 있다. 그때에 연구자들과 정책 당국은 지상파 디지털 전환 때와 같은 우를 범할 것인지 모를 일이다. 

 

྿ Aqiva를 비롯한 영국 인프라 불로소득 자본에 대해서는 브렛 크리스토퍼스, 이병천 외 옮김(2024), 『불로소득 시대의 자본주의』, 여문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