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건의 기사가 있다. 한 기사의 제목은 <문어의 지능, 강아지만큼 높다>는 생물학 관련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후쿠시마 앞바다 문어에서 방사능 발견>이라는 환경 오염 기사다. 두 기사 중 어떤 기사가 더 많은 독자의 클릭을 받을지 예측하는 인공지능을 만든다고 가정하자. 인공지능에게 이런 명령을 내린다. 첫째, 두 기사의 제목에 포함된 단어, 본문 글자수, 사진이나 그래픽 등 이미지, 기자 이름, 기사 작성 시간 등을 숫자와 벡터로 변환하라. 둘째, 숫자와 벡터로 변환된 두 기사 중 어떤 기사를 독자들이 더 오래 보고 많이 볼 지 예측하라. 셋째, 기사를 포털 뉴스에 올려서 예측이 맞았는지 확인하라. 인공지능이 ‘똑똑한 문어’보다 ‘방사능 문어’가 더 많은 조회수와 체류시간을 얻을 것이라 예측했고 그것이 맞았다면, 이후에는 ‘똑똑한 갑오징어’가 아니라 ‘방사능 갑오징어’ 기사를 추천할 것이다.
너무 단순한 설명일지 모르지만 방사능 문어가 더 좋은 기사라고 추천하는 알고리즘은 네이버 포털 뉴스 서비스의 자랑인 인공지능 AiRS다. 개발자들은 AiRS가 위와 같이 학습하는 과정을 심층신경망(Deep Neural Network) 학습이라고 불렀다.[주1] 우연인지 몰라도 AiRS의 학습 과정은 오랫동안 생물학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생물체의 신경계 원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인공지능은 인간이 작성한 기사 두 개를 전달받아 이를 숫자와 벡터로 변환한다. 방사능 문어든, 똑똑한 문어든,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인공지능은 단지 자기가 처리할 수 있는 신호로 받아든 문자와 이미지를 변환한다. 생명체의 기본적인 반응도 다르지 않다. 빛이나 소리 등 외부 자극이 감각기관으로 전달되면 이를 신체 내부에서 전달할 신호로 바꾼다. 인공지능은 이렇게 바뀐 신호로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 즉 더 많이 보고 오래 볼 기사를 선택한다. 생명체 또한 감각기관에서 변환되어 전달받은 신호에 대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선택한다. 이 선택의 장소가 바로 신경계, 인간에게는 뇌라는 기관이다. 동해 경포대 바다의 해파리가 여러분의 종아리를 쏜 것도 다 해파리의 신경계가 내린 명령 때문이다. 인공지능도 다르지 않다. 다만 침을 쏘지는 않고 ‘방사능 문어'라는 기사를 독자의 네이버 앱 화면에 노출시켜 불안감을 주는 정도다.
더 단순하게 말하면 네이버 뉴스 추천 알고리즘이 마치 생물체, 정확히 말해 높은 지능을 가진 척추동물의 신경계처럼 학습하고 작동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지렁이를 연상시킨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조상님의 말씀은 자극을 받으면 반응한다는 신경계의 원리를 꿰뚫어 보신 통찰이었던 것이다.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는 생물학과 심리학에서 오랫동안 전제로 삼아온 신경계의 작동원리였다. 이러한 자극-반응 모델은 단순하지만 강력했는데, 그 이유는 예전 고등학교 선생님들이 잘 아셨다. 대입 모의고사 한 과목에서 틀리는 문제 수 만큼 맞아야 한다는 자극을 우리에게 전달하면 성적이 오르기는 했으니까. 우리는 시속 50Km로 야구배트가 엉덩이 근육을 자극하면 온 몸이 꿈틀대며 반응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구 역사상 가장 똑똑하다는 호모 사피엔스에게 무려 1천억 개에 달하는 뉴런(neuron)으로 구성된 신경계가 생긴 이유를 야구배트를 맞고 꿈틀대기 위해서라고 말하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밟으면 꿈틀하는 지렁이와 맞으면 꿈틀대는 호모 사피엔스 사이에 차이가 없다면 4억 년 전 바다에서 육지로 나올 이유가 없었으니 말이다.
다행히 이 책의 저자인 고프리스미스는 아주 공평하게 지렁이와 호모 사피엔스의 신경계가 자극-반응만을 위해 진화하지는 않았다고 말하며 그 예로 해파리를 든다. 조금 전 경포대에서 여러분의 종아리를 쏘았던 해파리를 찾아보자.
해파리에게도 자극-반응의 신경계가 있다. 사진 오른쪽 둥그런 풍선 같은 부위에는 수면에서 들어오는 빛을 탐지하여 신체 내부의 리듬과 호르몬을 조절하는 신경계가 있다. 그런데 왼쪽에 동충하초처럼 무성한 촉수에는 또 다른 신경계가 있다. 이 신경계는 수십 개에 달하는 촉수의 움직을 통제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여기서는 자극에 따른 반응이 아니라 먹이를 먹거나 수중을 이동하거나 여러분의 종아리를 만났을 때 침을 쏘도록 촉수들을 통제한다. 이 신경계는 8인승 조정경기에서 뱃머리에 앉아 배의 방향과 속도를 보면서 노를 잡은 선수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키잡이(coax)에 비유할 수 있다.
해파리 촉수의 신경계는 ‘행동 형성’을 위해 진화된 신경계로 자극-반응의 신경계와는 다르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경계가 있다. 시속 50Km의 야구배트가 주는 자극이 선생님의 분노와 팔뚝이라는 ‘외부’에서 온다면, 열 몇 대 맞은 후 점심 시간이 되어 밀려오는 배고픔은 ‘내부’에서 내리는 명령이다. 이 명령은 절대적이어서 얼얼한 엉덩이의 고통을 이겨내며 식당으로 이동하도록 다리와 허리 근육을 움직이게 한다.
꿈틀대는 지렁이와 동급일 수 있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 해파리와의 비교에서 확실한 차이를 보인다. 4억 년 전 최초의 수륙양용 생물체가 육지로 올라왔을 때 가지고 있었던 척추는 어류, 조류, 파충류, 포유류 등 다양한 척추동물에서 진화하며 놀라운 기적을 이루었다. 행동 형성을 위한 신경계가 척추 산맥을 등반하여 자극-반응의 신경계와 만났던 것이다. 이런 만남의 장소가 바로 ‘뇌’가 되었다. 각종 감각기관에서 오는 자극을 신호로 바꾸고 중추신경계로 연결된 신체 곳곳의 신경계에 행동을 명령하는 뇌가 바로 호모 사피엔스를 만들어 냈다. 아래 그림과 같은 신경계를 ‘중앙화된 신경계’라고 한다.
신경다발이 신체 가운데 축을 중심으로 나무가지처럼 퍼져 있고 한 쪽 끝에 뇌가 있는 신경계 구조에는 큰 뇌가 필요하다. 뇌는 자극-반응의 기능 뿐 아니라 행동 형성을 위해 명령을 내리는 신경계의 컨트롤 타워와 같다. 우리는 이와 유사한 신경계 구조를 가진 유인원, 코끼리, 돌고래, 까마귀 등 척추동물의 뇌 용량이나 뉴런 개수를 따지며 호모 사피엔스의 우월함에 빠져든다. 하지만 우리와 같은 호모 사피엔스인 고프리스미스는 척추 뿐 아니라 딱히 뼈라고 할 만한 것이 거의 없는 문어의 신경계를 보여주며 그런 우월함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위 그림처럼 문어는 양쪽에 약 1억 2천만 개의 뉴런을 가진 시엽(optic lobes) 신경계, 척추동물의 뇌와 유사한 기능을 하며 중앙에 위치한 약 5천만 개의 뉴런을 가진 신경계, 한 개에 약 4천만 개(3억 2천만 개)의 뉴런을 가진 팔 신경계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종마다 다르지만 문어는 약 5억 개의 뉴런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무척추동물의 뉴런은 다수의 ‘신경절’(ganglion)로 구성되는데, 위 그림의 팔 신경계에 교차점이 여기에 해당한다. 두족류의 조상은 신경절만 가졌으나 진화를 거치며 몸의 상단에 집중된 신경절은 뇌에 가까운 형태를 갖추었다. 하지만 문어의 팔 여덟 개의 뉴런을 모두 합치면 뇌보다 많을 뿐 아니라, 각 팔은 독자적인 촉각, 후각, 미각 신경계를 갖고 있다. 팔에 붙은 빨판 하나에만 10만 개의 뉴런이 있을 정도니까. 뇌를 컴퓨터 CPU에 비유하며 중앙화된 신경계를 당연히 여기는 우리 사고로는 이해하기 힘든 구조다. 문어도 CPU와 같은 뇌가 있지만 여덟 개의 팔이나 입은 더 작은 뇌(신경절)들을 갖고 있다.
따라서 문어의 여덟 개 팔은 각각의 국지화된 통제(미세조정)를 내리는 신경계와 몸의 상단에 위치한 신경계의 하향식 통제(중앙통제)를 함께 받을 수 있다. 문어의 팔을 ‘다리’라고 부르며 잘려진 다리가 꿈틀대는 것을 보고 징그럽다고 말하는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이해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호모 사피엔스는 돌멩이를 깨뜨려 망치를 만들 때부터 이렇게 이해하기 힘든 존재들을 터부시하거나 악령으로 여겨왔다. 2021년에도 이런 습관은 여전하다. 다만 아래 그림처럼 상상력이 조금 더 발휘될 뿐이다.
문어의 눈으로 보면 호모 사피엔스나 척추동물은 답답하기 그지 없는 생명체다. 일정한 각도 안에서만 움직이는 관절로 구성된 신체는 전혀 자유롭지 않으니까. 게다가 척추동물의 팔과 다리는 알아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눈으로는 상어가 다가오는지 감시하면서 여덜 개의 팔이 알아서 움직이며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문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뇌와 신체의 구분을 넘어선 생명체다. 중앙화된 신경계를 진화의 최종 단계라 여기는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과 유사한 기능을 갖춘 인공지능을 만들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런데 인공지능 학습을 신경 학습에 비유하는 것은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 지나친 걱정이나 그릇된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앞서 말한 네이버 뉴스서비스의 인공지능 AiRS를 다시 보자. AiRS가 뇌와 같은 신경계라면 1분에 수백 개의 기사가 쏟아지는 ‘자극’에 반응해야 한다. AiRS는 독자들이 많이 클릭하고 오래 볼 기사를 예측하고 추천하여 예측 능력을 계속 향상시킨다. 그런데 AiRS가 독자의 모바일 앱 화면에 기사를 노출하는 결과값, 즉 기사 추천을 과연 ‘행동’라고 부를 수 있을까? 5억 4,200만 년 전인 캄프리아기에 나타난 원시 생명체의 뇌조차 자극을 인지하고 근육에 신호를 주어 반응할 뿐 아니라 신체 각 기관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행동을 조율했다. 하지만 AiRS가 받는 수 천 개의 기사라는 자극은 천차만별의 역량을 가진 기자들이 쓴 행동의 결과다. AiRS가 이 자극을 받아 독자들이 많이, 그리고 오래 볼 기사를 선택하는 것은 반응에 가깝다. 물론 개발자는 AiRS가 학습을 많이 할수록 높은 조회수를 얻을 기사를 더 잘 추천하여 노출한 결과를 행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행동이 또 다른 학습을 위한 자극이 되려면 독자는 기사를 클릭해야 하고 몇 초라도 읽어야 한다. 굳이 비유를 하면 AiRS라는 인공지능 뇌는 독자라는 근육에 ‘이런 행동을 하면 어떻겠니?’라는 신호를 보낼 뿐, 클릭하는 근육은 인공지능의 것이 아니라 독자라는 사람의 눈, 뇌, 그리고 손이다.
이렇게 보면 인공지능의 신경 학습이란 가장 초보적인 신경계의 기능, 즉 자극-반응 모델에만 국한된다. 게다가 학습을 위해 다시 받게 되는 자극은 인공지능이 수행한 행동이 아니라 몇천 만 명의 독자가 각자 수행한 뉴스 클릭과 읽기라는 행동의 결과다. 그것도 인공지능보다 훨씬 똑똑한 뇌가 내린 행동 명령이기도 하다. 그래서 AiRS와 같은 인공지능을 설명할 때 인간의 뇌와 신경계에 비유하는 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설명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신경계를 모방했다고 하는 인공지능은 때로 문어나 지렁이보다 더 멍청할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받아들이는 자극이 자신이 보인 반응의 결과인지, 자극을 준 인간의 행동이 자기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당최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으로 발생한 외부의 변화(자극)와 그렇지 않은 변화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은 경험과 의식에서 매우 중요하다. 문어가 인공지능보다 더 똑똑하다는 의미는 인공지능보다 월드컵 경기의 승무패를 정확히 맞출 확률이 높다는 뜻이 아니다. 문어는 인공지능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그리하여 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질문이 나온다. 대체 경험이란, 그리고 의식이란 무엇인가?
To be continued
[주1] 유봉석, 최재호, 최창렬(2020),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은 이렇다”, <관훈저널> 2020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