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민영화는 실수였다

2050년 시작된 파업으로 우리나라는 위기에 처했다.

2020년 2월 3일

 

맥스 브룩스(Max Brooks)

 

편집자 주: 이 글은 SF작가, 미래학자, 철학자, 과학자들이 5년, 10년, 50년, 나아가 200년 후 우리가 읽으리라 상상하며 쓴 칼럼을 소개하는 “미래로부터 온 칼럼” 시리즈 중 하나다. 이들이 예측하는 과제는 현재로서는 상상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오늘날 시급한 문제를 조명하여 내일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아래 오피니언 기사는 픽션이다. (각주는 모두 옮긴이의 주이다)

 

미군이 파업 중이다. 특히 지금과 같은 시기에 미국과 계약을 맺은 군인들이 무턱대고 임무를 저버린다는 것은 믿기 힘든 일이다. 계약 협상이 3개월 째 지연되는 가운데, 전 세계는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분열된 왕실이 피비린내 나는 권력 투쟁을 벌이고 있다. 북한에서는 김씨 왕조를 무너뜨린 쿠데타가 핵무기의 위협을 동반한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중-러 평화유지군이 퀘백에서의 철수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최근의 이런 위기로 인해 최소 4개로 확인된 기계화 보병대대와 1개 완전무장 사이클론 여단이 워싱턴 D.C.를 초음속 사정거리 안에 두게 되었다. 이 와중에 미군 기지는 폐쇄되었고 미군 함선은 항구로 복귀하였으며 미군 항공기는 비행을 멈추었다. 심지어 국가 방위의 핵심인 미군의 공동 사이버스페이스망조차 “일시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 상태가 계속되고 있는 동안 망운영자들은 자택에서 임금인상, 노동시간, 휴가일수, 그리고 무국적 시민 자격으로 전쟁 범죄 뿐 아니라 미국 법률에 의한 모든 범죄행위로부터의 면책 소식이 들려오기만 기다리고 있다.

 

옛날 군대였다면 이런 행위는 반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반란”이라고 하려면 민간 계약자들이 아니라 정부군의 반란이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 민간 계약자들은 바로 우리가 안보를 맡긴 이들, 즉 용병들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나라는 마니플사(Maniple Ltd.)의 최고 경영자부터 외국 전장의 장병들까지 이윤을 목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의 경계 아래 잠들고 있었다. 반역이란 충성 맹세를 어겼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반역자”라고 부를 수 없다. 그들은 미국 헌법을 보호하고 수호하겠다는 맹세를 결코 어긴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맹세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들은 왜 이래야 하는가? 우리는 공무원이 아닌 기업 직원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직원들이 만든 노조가 합법적으로 더 넓은 범위의 복리후생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당연하다 생각할 것이다. 만일 이를 탐욕이라고 여긴다면 애초에 문제를 일으킨 것은 우리의 탐욕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민영화 추진은 2032년 국방개혁법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일부의 주장처럼 2001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쇼핑몰로 가라”라는 연설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다.[1] 미국인들은 오랜 기간에 걸쳐 국가 수호자의 역할에서 서서히 물러났으며, 역설적이게도 이 후퇴는 정확히 한 세기 전에 이루어졌다는 냉정하고 냉혹한 진실을 보아야 한다.

 

1950년 1차 한국전쟁 동안, 우리는 혁명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즉 전쟁채권과 결별했다. 그 이전까지 모든 미국시민은 국방채권을 사서 국방에 기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당신이 아직 중국어가 아닌 오픈 소스 검색엔진에 접근할 수 있다면 “2차 세계대전 채권 모금 운동”을 검색해 보라(나는 여전히 퀘존이나 웰렌버그를 신뢰한다). 다양한 유명인사들이 국가 안보에 투자하라고 대중을 규합하는 많은 동영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전쟁 중에 이런 투자는 더 큰 대의와 개인과의 연관과 함께 종말을 맞았다. 그리고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970년대 징병제 폐지는 당시로서 좋은 생각으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았고, 지금까지도 메워지지 않는 문화적 균열을 만들어 냈다. 부유한 중산층(우리가 언제 중산층이었는지 기억해 보라) 아이들은 어떤 위험에도 처하지 않는 반면, 가난한 아이들을 전쟁터로 내모는데 사람들은 신물이 났다. 군당국도 진정한 반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징병제의 위험을 피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모병제를 찬성했다.

 

전문적인 전사 계급을 만드는 것이 확실한 해결책으로 보였겠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사회 전체가 끝없는 전쟁에 소모할 고립된 공동체를 만들어 낸 셈이다. 이들은 더 이상 우리의 아들, 아버지, 친구가 아니었다. 이들은 영화나 공항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우리와는 먼 수퍼히어로였다. 우리는 그들에게 “당신의 봉사에 감사드린다”고 말했을지 모르지만, 진짜 의미는 “내가 하기 싫은 일에는 나보다 네가 더 낫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낭비하고 잇따른 분쟁에 투입했다. 9/11 테러 이후 거의 20년 동안 미군은 전 세계 최소 일곱 곳의 주요 격전지에 투입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곱 곳이라니! 당시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가? 우리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관심을 가졌는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슬픔에 잠긴 전쟁 미망인에게 남편이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입대했다”고 말했을 때, 그는 우리 모두가 느낀 감정을 대변한 것은 아니었는가?[2]

 

2020년대 후반, 민영화가 얼마나 매력적으로 보였는지 이제는 쉽게 알 수 있다. 입대자 수는 감소했다. 자살률은 높아졌다. 심지어 끔찍할 정도의 교육과 영양 섭취 기준 탓에 미국 청년 전체의 71%가 군 복무에 부적합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사정이 이러한데 모병제를 계속 고집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정부가 문제의 해결책이 아니라 정부가 문제다”라고 공표했던 1980년대 초부터 민영화는 시작됐다. 이러한 철학은 1990년대 빌 클린턴 대통령이 “큰 정부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하면서 더욱 힘을 얻었다.

전 국민이 자기애에 빠졌는데 세기를 뒤바꾼 모든 혁신이 지금의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었다고 볼 수 있는가?  나와 같이 나이든 X세대 일부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석유 전쟁 시기에 미국을 포함한 전 세계가 대체 에너지를 소리 높여 요구하고 있을 때, 우리가 들은 것이라곤 스티브 잡스가 휴대폰으로 드라마 <더 오피스 The Office>를 본다며 자랑하던 일 뿐이었다. 

 

모두가 세금 절감과 이윤 극대화에 몰두하는 마당에, 교육부, 농업부, 교정국 민영화에 이어 국방이라는 거대 기업이 다음 순서임은 당연해 보인다. 이는 밀러 대통령의 “두 마리 새”라는 주장 이후 더욱 분명해 졌다. 무엇보다 군인이 없어진다는 것은 재향군인이 없어진다는 것을 뜻했고, 이는 곧 보훈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도 없어진다는 의미였다. 국가 재정의 관점과 정서적 관점 모두에서 보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참전용사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대신 죄책감을 외주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었다.

 

불과 25년 전만해도 이런 느낌이었다. 더 이상 “공공 방어”에 대한 의무도, 부양도 필요없다고 말이다. 이제 다른 누군가가 우리의 행복과 안전을 지켜줄 어떤 고통도 감당할 수 있으니 우리가 할 일은 “기도”하고 “자녀를 안아주며” “경제에 참여”하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우리는 국가에 대한 의무를 “나는 우리 군대를 지지합니다”거나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범퍼 스티커 크기만큼 줄여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라.

 

이렇게 말하면 미국인이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빠른 해결책은 없다. 물론 용병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단기 해법 같은 것은 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칼은 손에 쥐어주고 몸값은 지불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칼을 내려 놓는 것보다 더 안 좋은 일, 즉 그 칼을 우리에게 겨누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여러 국가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베네수엘라, 서콩고(West Congo),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한 때 아랍에미리트 “연합”으로 불렸던 곳에서 그랬다. 이 모든 나라에서 살인청부업자들은 은행의 지시에 따라 일하느니 은행을 소유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 판단했다. 미국에서 이런 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리고 민간 계약자들이 손바닥 뒤집듯 고용주를 바꾸는 일을 막으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고용주가 바뀌는 일은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2019년, 블랙워터의 설립자 에릭 프린스가 자신의 전투수행력을 중국에 판매했다.[3] 2031년, 중국은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옥수수와 대두 종자권을 가진 몬산토를 계열사로 둔 바이엘을 인수하여 대만발 불안을 부추켰다.[4] 당장이라도 지금의 미국 용병 파업은 중국-러시아가 매니플을 인수하겠다고 나선다면 불난 곳에 기름을 끼얹는 꼴이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적은 우리 군대와 싸울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 군대를 합법적으로 소유하게 되니까 말이다.

 

이것이 우리의 새로운 정상상태인가? 모든 계약협상이 파업, 쿠데타, 또는 최고입찰자에 대한 배신을 위협하는 과정이 될 것인가? 그럴지 모른다. 아마도. 우리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급여를 지급하길 멈추고 스스로를 보호하기 시작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다면 다시 징병제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물론 아니다. 오늘날 전쟁은 방아쇠를 당길 군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도로 훈련되고 전문화된 전사가 필요하지만, 이들에게는 범퍼 스티커 이상의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우리는 전쟁채권과 전쟁세를 다시 도입해야 하며,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들보다 더 위대한 것의 일부라는 것을 몸이 기억할 수 있도록 국가 봉사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혁신 분야는 그저 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을 더 낫게 만드는 독창성에 노력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 그러한 독창성을 구축하기 위해 이윤을 조금 줄여야 한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미국의 기업을 보호한다면, 미국 기업도 미국을 보호해야 한다.

 

끝으로 우리는 개인화된 모바일 화면에서 <더 오피스> 다시보기보다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대해 배워 필요한 갈등과 언제든지 발생할 갈등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전쟁을 막는 최선의 방법은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래야 전쟁은 덜 일어나고, 동료 시민들이 우리를 위해 목숨을 거는 위험에 나설 때란 모든 선택지가 사라졌을 때라는 것을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아야 한다는 확신을 줄 수 있다.

 

이러한 주장은 혁명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아마 진화에 더 가까울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빠진 무덤을 파는 데 한 세기가 걸렸고, 이 무덤에서 빠져나오는데 또 한 세기가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권자, 납세자, 이웃, 부모로서 오늘부터 시작한다면, 내일을 구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맥스 브룩스는 『월드워 Z』와 곧 출간될 『데몰리션』의 저자이다. 또한 웨스트포인트 현대전쟁연구소의 비상임 선임연구원이기도 하다.


[1]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부시 대통령은 국민에게 희생보다 쇼핑을 독려했다. “플로리다 디즈니월드로 갑시다. 가족들과 함께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인생을 즐기십시오”라는 발언이 그것이다. 이는 신용에 기반한 과잉 소비를 부추겨 이라크전의 총사령관인 부시 자신에 대한 불만을 막으려 했다는 정치적 해석을 낳았다.

 

[2] 2017년 서아프리카 니제르에 벌어진 IS와의 전투에서 사망한 라 데이비드 존슨 병장의 미망인에게 트럼프은 “그는 이런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입대했겠지만, 그래도 가슴 아픈 일”이라며 전화를 했다. 트럼프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미망인과 동승했던 민주당 의원이 사실임을 주장하며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3] 2015년 5월, 홍콩에 본사를 둔 프런티어서비시스그룹(FSG) 회장 에릭 프린스는 아프리카 내전 지역에 진출한 중국기업을 보호할 용병 투입 계약을 중국과 맺었다. 이 기업의 가장 큰 후원자는 중국 최대 국영업체 시틱그룹이다. 그러나 미군 네이비실 장교 출신이었던 에릭 프린스는 1997년 2009년 매각 때까지 미정부로부터 총 20억 달러에 달하는 계약을 따낸 용벙회사 “블랙워터”의 설립자였다. 블랙워터는 9/11 직후 최대 매출을 기록헀다. 

 

[4] 지금도 바이엘(Bayer) 그룹은 중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국가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다. 중국과 긴장관계에 있는 대만에도 바이엘 현지법인이 있다. 저자는 중국이 바이엘사를 인수하면 친미 관계를 유지하던 대만으로부터 미국을 위협할 수 있다는 가정으로 쓴 것이다.

 

※ 원문은 <The New York Times> 2019년 2월 3일자 "An Op-Ed From The Future"에 실린 칼럼입니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