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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학이건 사회과학이건 "과학"이라는 명사가 붙은 모든 것들은 각자의 고유한 대상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엇"을 연구하는가에 따라 그것을 "어떻게" 연구할지가 정해지고 그로부터 특정한 분야의 과학은 차별성을 얻게 된다. 흔히 자연과학은 우리 인간을 둘러싼 자연세계를 연구하는 학문이며 인문학, 사회과학은 인간의 정신과 문화, 그리고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사회를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여겨진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공계, 인문계의 이분법에 익숙해진 우리들은 이렇듯 "대상"도 다르고 따라서 "방법"도 다른 자연과 인간에 대한 각각의 학문을 엄밀히 구분하고자 한다. 이러한 이분법이 과학을 업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상식으로 된 것은 그렇다 해도, 어떤 분야건 "과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조차 이러한 이분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황우석 박사의 연구팀에 대한 "난자 제공 의혹"에 온 나라가 떠들썩 하다. 난치병을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과정상의 문제가 있더라도 그 결과와 이익을 생각한다면 대승적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 난자 기증에 "돈"이 오간 것은 분명히 잘 못된 것이라는 말, 이런 사태를 방지하지 못한 보건복지부에 대한 질타, 그리고 제도와 감시체계의 정비 요구 등등...

  어릴 때부터 익숙했던 이공계/인문계의 구분은 요즘 들어 어느 때보다 막강한 위력을 떨치는 듯 하다. 황우석 박사가 처한 "곤경"에 쏟아지는 의혹만큼이나 "황우석 박사 구하기" 역시 대단한 호응을 얻고 있다. 의혹제기 며칠 후 "난자기증재단"이 만들어지고 "난치병 퇴치와 국익을 생각한다면 당연히 나서야 할 일"이라고 말하는 기증자들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난치병 퇴치'은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일이라는 뜻을 담은 셈인데, 그렇다면 "국익"은 무엇일까? 아마도 줄기세포연구로 얻게 되는 생명공학의 선진국 지위와 다가올 바이오 산업에서 주도권이 그러한 국익이 될 것이다. 언제나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국익", "국가안보" 따위의 용어였다. 한 개인의 생명보다 중요한 국익과 국가안보가 존재할 수 있을까? 좀더 솔직해 지자면, 바이오 산업에서의 주도권이란 곧 과학기술을 이용한 "자본"의 문제이다. 이 자본 역시 소위 인문계 최대의 화두가 아니었던가.

  자연과학이건 인문학이건 "무엇"을 연구할지와 "어떻게" 연구할지가 아무리 서로 다르다 해도, "왜" 과학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바로 여기서 이공계와 인문계의 이분법이 가져오는 최대의 해악이 존재한다. 자연과학의 목적과 인문학의 목적이 다를 수 있을까? 더군다나 인간의 몸을 연구하는 "생명공학"이 인간 우리 자신에 대한 연구라면, 그 "왜"에 대한 질문은 어느 분야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일이다. 여성의 건강과 인권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해야 할 일이지, 제도와 법의 정비부터 시작해야 할 일은 결코 아니다.

  생명의 시작인 "난자"를 돈으로 매매하는 것에 대해, 설사 기증이라해도 "보상"을 지불했다는 것에 분개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래서 이런 문제는 "합법적"으로 제도를 수립하여 사회적으로 감시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온다. 그런데 "돈"이 오가는 난자매매의 문제는 지적하면서도, 바이오 산업의 선진국을 이뤄내겠다는 줄기세포연구의 "국익"과 "자본"이라는 더 "큰 돈"의 거래에는 왜 아무런 의문과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지... 올해 가을, 황우석 박사와 인문학자들이 모여 무슨무슨 학술대회라는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곳에서 무슨 얘기들이 오갔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대화가 더욱 필요한 때는 바로 지금인 듯 하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