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3. 21:36
30대의 병력
이기선
대체로 비가 자주 내렸다 우산은 잘 펴지지 않았고 사랑은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인적 끊긴 밤길을 신파조로 걸었다 詩가 되지 않는 말들이 주머니에 넘쳤다 슬픔의 그림자만 휘청이게 하였을 뿐 달빛은 아무 보탬이 되지 않았다 맹세의 말들이 그믐까지 이어졌다 낮에는 그 공원 벤치에 앉아 낙엽을 헤아렸다 바람이 심하게 훼방을 놓았다 나는 성냥알을 다 긋고도 불을 붙이지 못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야 했다 담배를 거꾸로 물었다고 그가 일러주었다 쓰고 싶지 않은 말들을 일기에 적었다 뚜껑 열린 만년필은 금세 말라버렸고 망설였던 흔적이 행간을 메웠다 두 눈을 부릅떴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앓을 만큼 앓아야 병이 낫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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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에 닿으려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맞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