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의 병력

이기선

대체로 비가 자주 내렸다 우산은 잘 펴지지 않았고 사랑은 나를 찾아주지 않았다  인적 끊긴 밤길을 신파조로 걸었다  詩가 되지 않는 말들이 주머니에 넘쳤다 슬픔의 그림자만 휘청이게 하였을 뿐  달빛은 아무 보탬이 되지 않았다  맹세의 말들이 그믐까지 이어졌다  낮에는 그 공원 벤치에 앉아 낙엽을 헤아렸다  바람이 심하게 훼방을 놓았다  나는 성냥알을 다 긋고도  불을 붙이지 못해 낯선 사람에게 말을  건네야 했다  담배를 거꾸로 물었다고  그가 일러주었다  쓰고 싶지 않은 말들을 일기에 적었다 뚜껑 열린 만년필은 금세 말라버렸고 망설였던 흔적이 행간을 메웠다  두 눈을 부릅떴지만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앓을 만큼 앓아야 병이 낫던 시절이었다.

-------------------------
시는 언어가 도달할 수 있는 극한에 닿으려 한다고 누군가 그랬다. 맞는 말이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