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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임신 시점에서 수컷이 자식에 대해 투자한 자원량은 공편한 분담량, 즉 50%보다 훨씬 적다. 개개의 정자는 아주 작아서 수컷은 매일 수백만 개의 정자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수컷이 서로 다른 암컷들을 이용하여 단시간 내에 많은 수의 새끼를 만드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개개의 배가 수정할 때 어미로부터 충분한 먹이를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암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일정한 한도가 있는 반면에 수컷이 만들 수 있는 아이의 수는 사실상 한계가 없다. 수컷이 암컷을 상대로 한 착취는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중략)…

암컷이 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먼저 지적한 또 하나의 예는 수컷에게 구애의 급식을 요구하는 것이다. 새의 경우 이 행동은 암컷이 어떤 종류의 퇴보를 일으켜 새끼 때의 행동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암컷은 새끼가 나타내는 것과 같은 제스처를 취해 수컷에게 먹이를 요구한다. 그와 같은 방법은- 조류의 수컷에게는 -성인 여성의 유아적 말투나 입을 삐쭉거리는 것을 남성이 귀엽게 봐주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암컷의 매력으로 생각해 왔다.

이 시기의 암컷은 알을 만드는 일에 필요한 영양을 저장하는데 열중하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모두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구애 급식은 아마도 수컷이 알 자체에 직접 투자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을 것이다. 구애급식은 암컷과 수컷이 최초로 자식에게 주는 투자량의 격차를 좁히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리처드 도킨스, 홍영남 옮김, 『이기적 유전자』, 을유문화사. 232쪽, 250쪽.

  며칠 전 수능이 쉽게 출제되어 논술이 입시당락을 좌우한다고 하자. 며칠 사이에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절판되고 증보판(30주년 기념?)이 새로 나왔다고 한다. 학원에서 고등학교 아이들과 이 부분을 함께 읽던 중, 남자아이들 모두가 “아... 그래서 여자친구 만나면 맨날 우리가 먹을 걸 사줘야 하는 군요.”라며 ‘깨우침’을 얻었다고 좋아했다.

  요컨대 수정란에 있어 자신의 투자량이 수컷보다 훨씬 많은 암컷은 이후 양육에 대한 부담을 함께 나누고자 ‘성실한’ 수컷을 찾기 위해 일종의 “전략(strategy)”을 구사한다. 위에 말한 ‘구애 급식’ 이외에도 암컷은 수컷에게 집짓기를 시키거나, 교미를 순순히 허락하지 않음으로써 시간지연을 통해 일종의 투자량을 증가시키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연예에서 벌어지는 각종 밀고 당기기를 도킨스의 이야기를 통해 ‘쌈빡하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책 제목 『이기적 유전자(Selfish Gene)』가 말해 주듯이, 도킨스는 인간이란 ‘자기복제’를 유일한 지상명령으로 갖고 있는 유전자가 그 생존과 복제를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한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가 보기에 암수관계 혹은 남녀관계 역시 자신의 유전자의 50%를 가질 복제 유전자를 지구상에 계속 잔존케 할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사랑’이나 ‘운명’ 따위는 끼어들 여지가 없다. 유전자가 이렇게 ‘이기적’이라면, 그 유전자의 생존기계인 우리들은 ‘공익’따윈 저버리고 모두 사적인 이익만을 추구하게 된다. 요컨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인 셈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공멸할 이 이기적 유전자의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도킨스의 대답은 간단하다. 서로가 자신의 유전자를 존속시키려는 이들 사이에 각기 다른 전략들이 존재한다. 이 전략들의 교묘한 조합은 개개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전체 구성원들을 일종의 안정된 균형상태로 인도한다. 이를 위해 그가 도입하는 이론이 바로 게임이론(Game Theory)이다. 해서 상이한 전략들의 추구와 그 균형은 “물보다 진하다”고 말하는 가족과 같은 혈연관계에서 전체 사회까지 확대되어 나타난다. 이쯤 되면 부모가 자식에게 쏟는 애정 역시 이기적 유전자에 의한 일종의 ‘투자전략’일 뿐이다.

  가히 도킨스는 사회생물학의 아담 스미스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타인을 생각하지 않고 각자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할 때 의도한 것보다 더 큰 전체의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1970년대 신자유주의를 준비하던 자본가 그룹들에게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로 부활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기적 집단들이 자신들도 모르게 도달하게 되는 안정된 전략구성은 그것이 최대의 효용으로 계산된다는 점에서 현대판 공리주의의 부활이라고 하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논술시장에서 이 책이 그토록 잘 팔리는 것도 그저 ‘현대의 고전’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도리어 그 인기는 생물학이라는 자연과학 역시 이렇게 철저히 정치적인 것임을 역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