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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물론 회화 작품 이외의 다른 대상들, 예컨대 지식도 똑같은 항목들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경우 경쟁 공동체의 제도적 시공간은 시험, 더 정확하게 말해서 경쟁 시험이다. 바로 거기에서 고블로가 대학입학자격시험, 곧 세습적 사회 계급의 사회적 문턱을 주제로 하여 그 기능을 올바르게 분석한 바 있는 "세속적인 앎의 신성한 앎으로의 본질적 변화," 그 "앎에 대한 관료주의의 세례"(마르크스)가 일어난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앎이 가치/기호로서의 앎, 귀족의 권리증서로서의 앎으로 변화하는 동일한 작용에는 그 보수적인 의식에, 그 성찬식에 참여하는 모든 동류들에 대한 똑같은 공인, 똑같은 차별이 따른다. 또한 (학자, 지식인, 사회학자들) 회의도 기호의 쟁투적 남용에 토대를 둔 특권 공동체와 지식계급의 유전(遺傳)장소, 세습적 재생산의 장소로서 분석될 수 있을 것이다. - 경마와 경마 도박이 말 품종의 향상에 이바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게다가 말과 경주는 또한 사치 가치들의 암시장처럼 훌륭한 연구 대상일 것이다), 회의는 앎의 증진에 도움이 된다.”
습관일지는 모르지만, 난 한 번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길 좋아한다. 케이블 채널들의 공헌이 크겠지만, 어떤 영화들은 처음 보았을 때 내가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 눈에 들어오고 전혀 다른 이미지들로 남기도 한다. (어릴적 보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록키1"과 "정복자 펠레"가 지금 생각나는 영화다.)
보드리야르의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은 한 2년 전에 읽었던, 그것도 영역본보다 더 어렵게 느껴진 번역 탓에 절반조차 이해를 못했던 책이다.(저 위에 옮겨 놓은 글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다..- -) 다시 읽어도 곳곳에서 눈에 띄는 번역상의 오류는 여전하지만 이젠 어떤 것이 잘못 번역한 단어이고 개념인지를 알 수 있을 만큼 나이를 먹은 모양이다.
적어도 이 때 당시(1972년)의 보드리야르는 가장 월등한 모더니스트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책의 제목은 두 가지 뜻으로 읽을 수 있다. 기호학을 통하여 기존 정치경제학의 '대상'을 바꾸려는 비판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자체가 기호의 체계임을 폭로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전통적 정치경제학의 가치론을 비판하기 위해 그가 도입한 수단은 "기호학"이지만, 그 수단이 임무를 다하는 순간, 그 수단은 다시 보드리야르가 폐기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굳어진 모든 것들이 대기 속으로 사라지는(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자본주의의 모더니즘에서 지식인들의 최고 목적은 자신이 만든 이론의 폐기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