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3. 22:2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R. Barthes(1915~1980)                     J. S. Mill(1806~1873)

“...그렇다. 이 단어가 추악한 것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 역시 그런 식이다. 동어반복은 같은 것으로 같은 것을 정의하는(‘연극은 연극이다’와 같이) 언어적 장치이다. 사르트르는 그의 『감정 이론 개요 Outline of Theory of the Emotions』에서 이러한 유형의 신비한 행동들이 어떻게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어떤 이가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두려워하거나 화를 내거나 혹은 슬픔에 빠지는 것처럼, 그는 동어반복을 도피처로 삼는다. 즉 언어의 일시적인 상실이 그가 [그 언어] 대상의 자연적인 저항이라고 판단하는 것과 기묘하게도 동일시된다. 동어반복은 두 번의 살인을 저지른다. 동어반복은 합리성이 자신에게 저항한다는 이유에서 그것을 살해하며, 언어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이유로 그것을 살해한다. 동어반복은 적당한 때에 실신하는 것이며, 유익한 실어증이다. 동어반복은 죽음, 혹은 한편의 희극이며, 언어를 초월하는 실재의 진실에 격분하여 그것을 ‘표상(representation)’하는 것이다. 동어반복은 [이처럼] 기묘하기 때문에, 당연히 권위라는 강변(argument) 뒤에서만 피신처를 찾을 수 있다. 즉 끊임없이 설명을 요구하는 아이에게 부모가 자신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는 대답인 것이다. 예컨대 ‘그건 그렇기 때문이야’, 혹은 좀 더 낫게 말한다면 ‘이제 그만, 그게 다야’ - 이처럼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기묘한 행동은, 말로는 합리성의 몸짓을 취하지만 동시에 합리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 행동을 낳은 바로 그 말로 [이유를] 말한다는 점에서 자신을 인과율(casuality)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동어반복은 실패했다는 이유로 거부되어진, 언어의 뿌리 깊은 불신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언어의 어떠한 거부든지 그것은 하나의 죽음이다. 동어반복은 죽어버린, 미동조차 없는 세계를 만들어낸다.”
Roland Barthes, A. Lavers trans(1972). <Mythologies>, New York: Hill and Wang. pp.152-153.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는 존 스튜어트 밀(J. S. Mill)의 명언보다 더 결정적인 그의 말. “왜 전체의 행복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이유는 각자가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한에서 자기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실 외에 아무 것도 없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밀의『공리주의』를 보던 중 끊임없이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바로 “동어반복(tautology).” 바르트는 이 언어장치가 표상되길 거부하는 완고한 실재(reality)에 대한 언어의 무력감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 무력감을 감추기 위한 권위에의 의지를 정확하게 지적한다. 누군가 밀에게 왜 다른 많은 것들 중에서 “행복”이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목적인지 물었을 때,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저런 것이었다. “행복은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기 때문에 바람직한 것이다.” 이 끔찍한 동어반복의 연속이 공리주의라는 작은 책 전체를 지배한다.

  바르트가 동어반복을 부르주아 ‘신화(Myth)’라고 했을 때, 동어반복은 그저 서로 동일한 것들이 서로를 설명하는 방식이라고만 볼 수 없다. 신화라는 것 자체가 어떤 내용이 아니라 진술의 형식 문제라면, 동어반복이 신화인 것은 그렇게 말하는 형식 자체가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동어반복이라는 진술 형식의 반복.” 이것이 바로 동어반복이라는 부르주아의 신화이다. 어쩌면 우리는 단순히 “한 말 또 한다”는 반복되는 몇 개의 낱말들에 질려 동어반복을 말할지도 모른다. 반복되는 단어에 질리게 하여 정작 그 단어들이 말하여지는 방식의 반복을 은폐하려는 전략. 어디선가 보드리야르(J. Baudrillard)가 말했던 그 랑그의 동어반복은 바로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의 상식은 설사 그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여도 동어반복의 신화를 오늘날에도 완성시키고 있다. 밀이여, 영원하소서.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