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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츠의 연구와 더불어 다음과 같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대중 문학에서 '초인'이 당대 현실의 삶과 관습(소부르주아와 소지식인은 특히 그러한 낭만적 이미지에 영향을 받았다. 낭만적 이미지는 그들의 '아편'이며 '인공적인 파라다이스'로서, 당시 현실의 직접적인 삶의 불행과 속박과 대조된다)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가 그것이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격언이 명성을 얻는다. "백 년을 양으로 사느니 하루를 사자로 사는 것이 낫다." 이 격언은 어쩔 수 없이 양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 얼마나 많은 양들이 이렇게 말했을까. "아! 내가 하루라도 그런 힘을 가졌으면......" 집요한 '재판관'이고자 하는 열망은 몽테크리스토의 영향을 느끼는 사람의 것이다.”
어떤 글쓰기이건 그것은 누군가를 대상으로 한다. 때로는 알튀세처럼 글쓰기 자체가 하나의 철학함일 수도 있으며, 바르트처럼 자신을 없애기 위한 글쓰기일 때도 있다. 그러나 그람시가 최악의 조건에서 써내려간 서른 두 권의 노트의 독자는 아마도 자기자신이었을 것이다. 20년 3개월이라는 선고를 받고 도저히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그 곳에서, 출판과 대중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다. 수많은 메모와 단상들 속에서 우리가 그람시의 모순된 논리와 뒤엉킨 정의들에 당혹해 하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자기자신을 독려하려는 의도였건, 지나온 삶을 후회하지 않으려는 의지였건 대중문학에 대한 그람시의 글에서는 민중들에 대한 희망과 지식인들- 그가 말했던 전통적 지식인 -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 있다. 그람시가 던졌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왜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탈리아 작가가 아닌 뒤마, 코넌도일 같은 외국의 작가들의 소설을 더 좋아하는가?" 그람시가 보기엔 이탈리아 작가들 중 어느 누구도 민중 출신의, 그리고 민중의 열망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그가 말하는 "민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투철한 투쟁의 주체도 아니며, 이데올로기에 눈이 먼 희생자들 역시 아니다. 그람시의 민중은 의지와 체념을, 희망과 절망을, 저항과 도피의 욕구를 모두 가진 그런 존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