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3.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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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art Hall speaking at the Center's International Conference on Mass Culture, 1984>

"실업률이 증가함에 따라 노동계급인 부모들은 교육의 경쟁적 측면을 보다 진지하게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 설사 장래성이 없고 저급기술이며, 지루한 노동의 처지에서 행해질 지라도, 숙련공이 되는 것이 실업수당으로 버텨나가는 것보다는 더 낫다는 것이었다. 발의되었을 당시에는 형태상으로 종합교육이었던 것이 [시장에 의해] 요구되는 능력을 주지 못하자, 노동계급의 자녀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숙련화'되고 '계급화'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가 경제적 존재의 "어리석은 충동"이라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사회민주주의적 발의안의 실패가 교육에 있어 취약점을 더욱 확실히 드러내게 되자, 자녀 교육에 대한 노동자들의 적극적인 열정은 교육시장을 지향하는 더욱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접근을 지지하는 쪽으로 접합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으며 익숙한 궤도이자, 확실한 길이며, 전통적이고 진부한, 그리고 안전한 영역으로의 거대한 후퇴는 가장 강력하고도 깊숙히 자리한 상식적인 정서 중 하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교육에 대한 이 같은 정서는 급진 우파(radical right)의 담론 중에서 가장 호응을 받은 주제 중 하나였다. 1960년대, 학부모 운동(parent power)은 이반 일리치(Ivan Illich)와 '탈학교 운동'을 함께 했던 급진적 운동의 일부였다. 1970년대와 80년대에, 이 학부모들은 보수당의 교육 대변인들이 뒤섞어 놓은 교육정책 중에서 가장 강력한 하나의 카드가 되었다."

Stuart Hall(1988), "The Great Moving Right Show" in The Hard Road to Renewal, Verso. p.54.

  한 때 급진적 좌파임을 표방했던 이들이 파시즘으로, 극우로 돌아서는 모습을 가리켜 그람시는 "변신(transforsimo)"이라는 표현을 썼다. 70, 80년대 교육정책의 후퇴와 이에 동조한 단체들을 바라본 홀의 시선도 그람시의 이러한 표현과 다르지 않다. 교육 문제에 있어 이러한 '변신'은 무엇보다 교육은 "정치적이지 않으며 정치적으로 해결될 수도 없다"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행해진다.

  한 때 고교 평준화를 부르짖다가, 세상이 달라지고 시대가 변했으니 특성화/전문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중요한 변명이자 논리는 바로 교육의 "비정치성"일 것이다. 여기서 정치라는 것은 한나라당이 목숨걸고 사수하려는 사립학교법 개정처럼 '정치인들과 이사장들의 이해관계'에 국한된 것이 결코 아니다. 특정시기 노동력의 재생산에 가장 적합한 교육체계를 개발하는 것, 그리고 이러한 방식이 "어쩔 수 없다"는 체념으로 귀결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정치이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