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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08.20 대통령인가, 입헌군주인가


대의 민주주의 아래 대통령, 또는 행정수반에 대한 몇 개의 인용문

 

이처럼, 헌법은 대통령에게 실제적인 권력을 부여해 주는 한편, 국민의회에게는 도덕적 힘을 보장해 주려 한다. 법 조문을 통해 도덕적 힘을 만들어 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차치해 두고라도, 헌법은 대통령이 모든 프랑스인들의 직접 선거권을 통해 선출되게 함으로써 다시 자기 자신을 폐기한다. 프랑스 전체의 투표가 국민의회의 750명의 의원들 사이에 분산되어 있는 반면, 이 경우에는 그 투표가 한 개인에게 집중된다. 각각의 개별적 인민 대표자들은 단지 이러저러한 정파, 이러저러한 도시, 이러저러한 교두보를 대표할 뿐이며, 또한 실태도 인물도 자세히 모른 채 누구든 간에 750명을 선출해야 한다는 필요를 대표할 뿐이다. 반면에 대통령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자이며, 대통령 선거 행위는 주권 인민이 4년마다 내놓는 강력한 으뜸패이다. 선출된 국민의회는 국민과 형이상학적 관계를 맺고 있지만, 선출된 대통령은 국민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있다. 실제로 국민의회는 개별적인 대표자들을 통해 국민 정신의 다양한 측면들을 대변하고 있지만, 대통령은 이 국민정신의 화신이다. 국민의회에 비하면 대통령은 일종의 신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민의 은총을 입고 있는 것이다.

 

마르크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1869년.

 

직접 선거를 통해 행정수반을 뽑는 국가에서, 대통령 선거가 정치적 삶 전체를 결정하는 주요 선거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의회 내 다수파의 지도자가 행정수반인 국가에서는, 지도자 개인이 입법 운동과 선거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정당은 여전히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정당은 중계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영향력 있는 사람의 연결망, 자금 조달 능력, 그리고 활동가들의 자발적 봉사와 같은 결정적 자원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들은 지도자를 위해서 봉사하는 도구가 되는 경향이 있다. 의회 정치와는 반대로, 하원보다 정부의 수반이 전형적인 대표로 이해된다. 그러나 의회 정치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와 같이 규정한 대표자와 그를 선출한 사람 간의 연계는 본질적으로 사적인 성격을 띤다.

 

버나드 마랭, <선거는 민주적인가>, 1997년.

 

시민운동이 대통령 권력이나 행정 권력에 의존해 그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반대로 시민운동을 정부 운영의 동력으로 삼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느 경우든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기 어렵다. 운동의 방법으로 통치할 수 없고, 통치의 방법으로 운동을 이끌 수 없듯이, 정부는 정부의 길이 있고 운동은 운동의 길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문재인 대통령은 내 기대와는 아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적폐 청산과 직접 민주주의를 들고 나온 것은 민주주의를 ‘정부의 문제’가 아닌 ‘운동의 문제’로 접근하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박근혜 정부를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중심이 되어 여론을 직접 이끌고 내각을 수직적으로 지휘하는 정부 운영방식이 재현되었다. 박근혜의 ‘보수판’ 청와대 정부와 비견될 만한 ‘진보판’ 청와대 정부의 등장으로 보였다.

 

박상훈, <청와대 정부>, 2018년.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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