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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2.27 가장 정치적인 콘텐츠, 3PRO TV의 대선 특집

대선 후보 두 명의 유튜브 경제전문채널 출연이 화제다. 대선 국면 언론의 역할을 유튜브 채널이 했다는 평가- “3PRO TV가 나라를 구했다” 등 -는 유튜브 이용자 뿐 아니라 지상파 방송 종사자들에게서도 나오고 있다. 기존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선거 콘텐츠라는 우호적인 평가에는 관행적이고 경직된 방송사 토론과 달라지지 않은 대선 보도에 대한 비판이 깔려있다. 그러나 3PRO TV의 대선후보 특집을 기존 언론과 비교할 때, 유튜브 포맷이나 ‘이용자 중심’이라는 표면의 차이에만 주목할 수 없다. 

 

3PRO TV 채널 캡처

 

토론이 아닌 인터뷰

3PRO TV의 대선 특집은 말 그대로 ‘특집 인터뷰’이지 방송 토론이 아니었다. 미리 전달한 질문을 두 명의 후보가 따로 녹화하여 편집한 콘텐츠다. 공직선거법 등 각종 법령과 규칙 제한을 받는 TV 방송 토론에서는 이런 질문과 답변 시간이 불가능하다. 뉴스 프로그램 내 인터뷰 편성도 정당과 캠프의 공정성 항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럼에도 주식과 부동산 같이 압축된 주제의 질문에 1시간 반 분량의 충분한 답변을 후보에게 듣는 방식은 경제에 대한 후보의 인식과 깊이를 시청자에게 체감하게 해 준다.

물론 제작 환경의 차이도 있다. 3PRO TV는 진행자 3명 이외에도 다수 제작 인력과 조직을 갖추었지만 방송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거대 조직, 제작 규정, 질문의 사전 데스킹, 캠프와의 사전 조율에 후보 도착시 의전과 동선 설정까지(가끔은 방송사 사장님도 나오신다) 일이 커져도 너무 커진다. 방송사는 3PRO TV처럼 빠른 결정과 지시를 내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서로 다른 목표

유튜브와 팟캐스트 플랫폼 콘텐츠인 3PRO TV는 이번 대선 특집의 목표가 명확했다. 아침 라이브 방송의 동시 시청자가 5만 명에 이를 정도의 안정된 시청취자를 가진 이 채널은 이번 특집으로 조회수 증가는 물론 구독자와 인지도 제고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물론 이런 목표는 수익과 직결된다. 

그러나 지상파를 비롯 레거시 방송사에 대선 후보 토론회나 인터뷰의 편성 목표는 모호하다. 방송 토론은 법으로 정해진 의무이고 한 분야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외교 등 여러 분야에 백화점식 질문을 던지면서 상호 토론 시간 등 룰(rule)도 적용해야 한다. 높은 시청률이 나와도 얻게 되는 보상은 딱히 없다. 이러다 보니 레거시 미디어의 대선 후보 콘텐츠는 후보자의 실언, 태도, 진위 여부 등 다른 언론이 보도할 아이템만을 제공하게 된다. 보도의 확산 과정에서 각 후보 캠프는 방송 토론 진행의 공정성에 대해 항의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에는 후보와 시청자가 정치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여기는 각 방송사의 정체성도 작용한다. 결국 레거시 미디어의 대선 후보 토론과 인터뷰는 각 매체가 유지하고 있는 영향력 확인에만 머문다. 

 

 

중산층과 유권자

3PRO TV 대선 특집을 향한 호평에는 후보 간 상호비방이 없는 경제 문제를 다루었다는 점도 작용했다. 해외 증시 정보와 투자 상담 등을 진행하는 3PRO TV의 강점은 시청자의 정치적 지향과 무관한 공통 관심사인 증권과 부동산 등을 다루는데 있다. 국내 증시의 저평가, 다가구 양도세,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등 한 푼이라도 재산 증식을 바라는, 그래서 눈 앞에 어른대는 중산층을 향한 욕망을 가진 이들에게 정치란 외적 변수일 뿐이다. 

그래서 3PRO TV 대선 특집에서는 후보에 대한 의혹이나 검증이 필요 없었다. 늘 듣고 보는 시청자들의 공통 관심사에 대한 질문을 후보에게 전달했을 뿐이고, 질문을 더 잘 설명하거나 답변을 확인하는 절차만을 거쳤다. 두 후보의 발언이 무겁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레거시 미디어의 시청자는 다르다. TV 앞에 앉는 순간부터 후보의 한 마디 발언과 작은 몸짓까지 비교와 평가 대상이 된다. 후보에 대한 지지가 강할수록 시청자의 이런 평가는 방송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 쉽다. 소위 ‘부동층’이라도 서너 개에 달하는 다양한 분야에 모두 관심을 갖지는 않는다. 후보가 준비를 잘해서 전문용어를 사용하면 이해는 더 어려워진다. 

지상파 방송이나 언론인 단체(관훈클럽 등)가 제작, 또는 주최하는 토론회가 어려운 점도 이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에, 다양한 소득 차이가 있고, 사는 지역이 다른 ‘유권자’ 공통 질문이 무엇인지 찾기란 쉽지 않다. 결국 각 언론사가 보도해 온 이슈를 후보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하거나 기자 자신이 궁금해 하는 질문들 밖에 던지지지 못하는 이유다. 

 

3PRO TV 댓글 중 일부

 

정치와 경제의 뚜렷한 경계

3PRO TV 대선 특집이 보여준 것은 디지털 콘텐츠의 의제 설정 능력이나 지상파의 몰락이 아니라 지극히 합리적인 개인(homo economicus)의 출현이다. 다수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들이 경제가 아닌 정치, 사회, 노동, 복지, 환경, 교육을 주제로 두 후보에게 같은 형식의 인터뷰를 진행한다고 생각해 보자. 어떤 분야든 정치적 입장이 포함될 수 밖에 없다. 차별금지법, 노동자 법적 지위 확대, 기후 위기와 원전 정책, 대입과 대학 개혁 등 무엇하나 쉬운 이슈가 없다. 

그러나 경제 문제는 다르다. 언제부터인지 정치적 입장을 막론하고 우리 모두가 한 푼이라도 더 벌고 한 푼이라도 손해보지 않겠다는 합리적 개인이 되었다. 중년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주식과 코인시장에 2030세대가 진입했고, 역대 최고 수준의 가계 부채는 아파트 값 하락을 결코 눈 뜨고 볼 수 없게 만들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전환 문제가 그랬듯, 교육이든 취업이든 투자한 비용만큼 얻지 못하는 모든 지위는 ‘불공정’하다. 이재명을 지지하든, 윤석열을 지지하든 경제 문제는 지극히 비정치적이며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정책 분야가 됐다. 

그래서 3PRO TV의 대선 특집은 좋은 기획과 콘텐츠 제작일지는 몰라도 ‘뜰 수 밖에 없는’ 분야였다. 1시간 반이나 되는 긴 인터뷰에서 각 후보가 말한 발언에 흥미를 가질 시청자들은 많았다. 그러나 주가 변동에 눈을 떼지 못하고 양도세 정책에 분노하며 코인 폭락에 한탄할 사람들만이 ‘시민’은 아니다. 두 후보의 발언이 ‘먼 나라’ 얘기로 들리는 사람도 결코 적지 않다. 다만 이들에게 두 후보 중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삶이 그닥 나아지지 않을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가장 정치적인 콘텐츠인 경제 콘텐츠는 이렇게 비정치적이 된다. 중산층이라는 신기루를 욕망하는 이들과 그 조차 포기하는 이들의 간극은 철저히 ‘비정치적’이다.

 

 

더욱 정치적이어야 할 레거시 미디어

3PRO TV와 지상파 등 레거시 미디어를 동일한 잣대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기술적 인프라 뿐 아니라 조직과 재원 구조, 그리고 규제까지 전혀 다른 미디어이기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사에게 왜 3PRO TV와 같은 대선 특집을 못 만드냐고 묻는 것은 포병에게 기마병처럼 왜 빨리 가지 못하느랴고 다그치는 꼴이다. 유튜브 플랫폼과 실시간 본방 중심 지상파 등 레거시 미디어의 차이는 오래 전에 확인됐다. 이제는 “왜 우리는 저렇게 못하는가?”라는 자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영역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해야 할 미디어라는 인정이 더 필요하다. 

이 인정은 3PRO TV와 같이 충성스러운 합리적 개인의 집합을 가진 미디어, 지극히 ‘중립적인’ 이슈로 더 많은 구독을 끌어내는 미디어가 아니라, 대선과 같은 협소한 정치에서 벗어나 더 넓은 정치의 영역을 만들어낼 과감한 시도로 이어져야 한다. 갈등과 충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미디어. 이런 용기를 ‘사회적 책무’라고 한다.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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