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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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적인 자본주의의 반(反)이성, 즉 지배에 의해 결정된 '대상화의 형식'을 통해 욕구를 불가능하게 만듦으로써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아가 인류의 절멸 위기로까지 몰고 가는 자본주의의 기술은 자기 자신을 희생시킴으로써 희생을 모면하는 영웅의 모습에서 그 원형을 만난다. 문명의 역사는 희생이 내면화되는 역사다. 다른 말로 하면 체념의 역사다. 체념하는 자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보다 많은 것을 삶에서 내주어야 하며 자신이 보호해야 할 삶보다 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 사람이 잉여인간 취급을 당하고 기만당하는 잘못된 사회 구조 속에서는 이러한 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디를 가든 만나는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교환을 피하고, 체념하지 않으며, 완전한 전체를 포착하려 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버릴 용의가 있는 사람은 자기 유지에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에게 남겨진 몫은 초라하기 이를데 없는 필연이다.”

Th. Adorno. <계몽의 변증법>

  작은 내 방 구석구석에는 사놓기만 하고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몇 편의 짧은 단락을 읽기 위해 산 책들이 쌓여있다. 언젠가는 읽을 것이라고 위안을 하지만, 이 위안의 전제는 그 책이 아니어도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는 하지 않아도 공부하는 사람들과 있으면서 안심하듯이, 읽지는 않아도 책을 사는 것만으로 공부의 절반을 했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때로는 몇 권의 책을 읽고서는, 그 속에서 언급된 사람들의 글을 읽지도 않고 틀렸다고 서슴없이 말을 내 뱉던 오만했던 기억도 있다.

  아도르노의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섣부른 재단질과 오만함. 스쳐읽거나 들었던 타인들의 평론 속에서는 이미 수도 없이 읽었을 그런 책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꼼꼼히 읽게 된 이 책은 단지 "변증법"과 "부정의 부정", "비판"... 등 새로운 지식의 습득 이상을 가르쳐 주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 글을 쓴다는 것, 남들과 대화를 한다는 것, 그리고 절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다.

ps: 위에 베껴 쓴 글은 얼핏보면 체념, 자기유지, 영웅 등의 일상어들로 가득하다. 아도르노의 글은 이런 식이다. 일상적 의미의 부정, 뒤집힌 것에 대한 또 한번의 전복. 어쩌면 책의 뒤표지에 적힌 "세계에서 가장 어두운 책 중에 하나"라는 하버마스의 말은 출판사의 마케팅용 수사일 것이다. 절망하는 만큼, 오늘날 우리에겐 이들의 절망은 규정되지 않은 열린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읽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