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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이후 지금의 구성주의적 접근이 등장하기까지 매스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 교과서는 그 최신판으로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다원적 무지(the pluralistic ignorance), 제3자 효과(the 3rd person effect)등을 열거했다. 이들은 사회심리학으로부터 여론과 미디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되었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한편으로 소위 주류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얼마나 철저히 관념론 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도 된다.

  무엇보다 이 이론들은 그 정도가 어떻든, 개개인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타인들”과 “실제의 타인들”이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론들의 차이가 있다면 두 ‘타인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다른가, 그리고 그 다름으로부터 어떤 행동이 도출되는가에 있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수용자 개인이 관념 속의 타인에게 복종한다거나(침묵의 나선), 실제의 타인들이 설득을 당하는 정도(effect)를 오판하거나(제3자 효과) 아니면 다수의 여론(opinion)을 오판하는 경우(다원적 무지)로 나누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이론들의 대상은 관념 속에 타인들을 갖고 있는 “개인”(수용자)과 그 개인들 각각의 “집합(set)”이다. 이들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관념 속 타인들’을 만들어 내는 수동적인 존재들이며(다원적 무지, 제3자 효과) 자신들이 만들어 낸 타인들에 종속되는 허위의식의 소유자들(침묵의 나선, 제3자 효과)이다. 이론의 대상이 되는 수용자들이 이런 존재라면, 이론의 주인공인 수용자들이 만드는 “관념 속 타인들” 역시 동일한 존재들이다. 텔레비전의 음란물을 보고 자신은 덤덤하나 다른 이들(관념 속 타인들)은 ‘잠재적인 성범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수용자 개인들이 존재한다.(제3자 효과) 이 개인들은 그 음란물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에 의해 관념 속 타인들을 만드는 수동적 존재이며, 동시에 그들이 관념에서 만든 타인들 역시 음란물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잠재적 성범죄자들’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탄환효과 이론의 무기력한 수용자들은 이렇게 7,80년대 이론의 안과 밖에서 두 번 부활한다.

  위 이론들을 만들고 검증해온 ‘이론가’들은 결국 무기력한 수용자라는 관념을 그들이 말하는 현실의 수용자- 아마도 그 이론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에게 투영하고, 그 현실의 수용자 개개인의 관념 속에 한 번 더 투영한다. 어쩌면 제3자 효과- “미디어의 효과는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나타난다” -는 그 이론을 만든 '이론가'의 자기 독백일 뿐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모르는 너희들은 그렇게 되겠지만 전문가인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론가이다.” 바로 여기서 관념의 무한한 투영이 벌어진다. 이론가의 관념은 이론에 투영되고 이론 속 주인공에 투영되며 그 주인공의 관념에까지 투영된다. 이 끔찍한 동어반복(tautology)이야 말로 헤겔이 그토록 거부한 악무한(vicious circularity)이자 자본주의 고유의 이데올로기기다.

  여기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념 속 타인들이 아닌 실제 타인들은 나와의 ‘현실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렇기 우리 모두는 이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이 이론들은 내가 날마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타인’이 아니라, 거꾸로 ‘관념 속에서 먼저 타인들이 만들어지고 이로부터 그들과 나의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관념 속의 ‘잠재적 성범죄자’는 나로 하여금 그들을 통제할 ‘방영금지’와 ‘특별법’을 지지하게 만들어 현실적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 관계는 현실이 아니라 개인의 관념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지는 셈이다. 결국 이 이론들이 말하는 유일한 현실적 관계는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사물(thing)인 매스미디어와 수용자 개인의 관계이며 이로부터 타인과 나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하는 물신성(fetishism)은 맑스의 <자본론>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대학 강의실에서 소개된 이 효과이론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7년 1학기 <커뮤니케이션 이론> 강의노트 중 일부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