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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unication Paradox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대다수의 모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발생 혹은 그 조건을 커뮤니케이션의 결과 혹은 목적에 일치시키고 있다. 특히 피스크가 말하는 과정학파 모델들은 송신자 의도의 충실한 전달이라는 면에서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발생조건을 그 결과의 완수 속에서 확인하려 한다. Shannon과 Weaver의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보여주듯, 송신자가 의도한 메시지는 그 “의도”를 가로막는 노이즈(noise)를 최소화시켜야 하는 임무(목적) 속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또한 Newcomb을 비롯한 대칭, 균형 모델 역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을 균형을 향한 욕구, 달리 말하면 불균형과 비대칭을 극복하려는 욕구로 설명하여 그 균형의 달성을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본다. 어느 것이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모델들은 발생의 조건(기원)에 그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결정론’이자 ‘목적론’을 이룬다. 메시지에 앞서 의도가 전제되고(과정학파), 의미에 앞서 구조가 전제된다(기호학파).

  그러나 이 모델들을 ‘전도(inversion)’ 시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에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즉 엔트로피(entropy)를 낮추기 위한 정보(information)의 양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애초에 발생시키는 것은 메시지를 통한 의도의 전달이 아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지 그 발생조건이 아니며, 도리어 발생조건은 “노이즈의 존재” 그 자체에 있다. 마찬가지로 균형, 대칭 모델의 삼각형들은 발생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균형, 곧 목적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균형을 향한 욕구, 즉 참을 수 없는 비대칭의 상태가, 비록 잘못된 표현이지만,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조건을 말해 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모델들이 상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상태는,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있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목적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정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의 발생조건, 즉 과정학파 모델 ‘자체’의 발생조건은 노이즈, 비대칭, 불균형인 셈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강의록 일부 5월 13일]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