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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의 프랑켄슈타인: 대중문화


  언젠가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프롤레타리아를 가리켜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러나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존재(I'm nothing, but I must be everything)"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가 독일 혁명의 유일한 주체로 당시 형성 중이었던 프롤레타리아를 지목한 것은 오직 그들만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는 역사이자, 동시에 노동자라는 계급을 부정하려는 모순된 역사에 다름 아니다.

  흥미롭게도 원작에서 '괴물'은 바로 이런 정체성의 부정을 시도한다. 괴물은 탄생 직후 자신의 흉측한 외모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여겨지는지 뼈져리게 경험한다. 괴물이 외딴 시골집의 창고에서 혼자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익혀 <실락원>, <플루타크 영웅전>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광경은 차라리 애처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꿈꾸던 괴물이 유일한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내쫓긴 순간. 그는 자신의 창조자가 속한 족속 전체를 절멸시키리라 다짐하는 '괴물'의 정체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20세기 대중문화 속 수많은 변종과 아종에서 이렇게 갇혀진 정체성만으로 재현되어 왔다. 당연히 이 재현의 핵심은 바로 괴물의 '외모'를 얼마나 끔찍하게 그려내는가에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바로 자신들이 공포스런 존재임을 잊게 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재현이야 말로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시작된 헐리우드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흥행은 바로 이런 전도의 시작이 아닐런지. 이 때 괴물은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조자의 이름을 얻고, 자신의 역사적 분신인 노동자 대중들에게 하나의 유희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아니며, 자신들이 19세기에 부르주아들을 떨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공포였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원작 속 괴물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보여짐’(시각적 이미지)은 1930년대 이후 영상매체에서 현실이 되었다. 셜리가 기대했던 작품 전체의 구성이 주는 공포는 이제 단순한 몇 컷의 시각적 공포로 대체되었다. 어디선가 아도르노(Th. Adorno)가 '부분에 의한 전체성의 전복'이라고 통탄했던 '문화산업'의 악몽은 이렇게 나타났다.

  1818년 이후 <프랑켄슈타인>이 거쳐온 변형과 전유의 역사는 하나의 부르주아 장르가 노동자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로 이입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서 느낀 공포는 이제 작가인 셜리의 몫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초의 한 소녀가 쓴 공포소설은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난 180여년 동안 <프랑켄슈타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스스로 언어를 익히고 모습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자신을 만든 박사와 소설을 쓴 작가의 존재마저 잊혀지게 만들었다. 자신을 만든 주체를 잊게 하고 그 주체를 지배하는 상품의 속성이 오늘날 대중문화의 성격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더욱 강력한 대중문화의 힘은 자신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대중들의 힘을 표상 뒤에 감추고 전도시키는 과정에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부르주아의 공포가 노동자들의 힘이었다면, 노동자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은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괴물을 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야 할 이들은 흥행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만일 우리가 '괴물' 프랑켄슈타인이라면, 누가 프랑켄슈타인을 두려워할 것인가.


Mary Shelley(1818/2003),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Hindle, M(2003), "Introduction" in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Moretti, Franco(1983), 'Dialectic of Fear', in Signs Taken for Wonders, London: Verso Editions and NLB.

Marcuse, H(1960), Reason and Revolution: Hegel and the Rise of Social Theory, Boston: Beacon Press.

[2008년 대중문화의 이해 강의록]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