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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 Von Holst
Frontispiece to Mary Shelley, Frankenstein published by Colburn and Bentley, London 1831
 

1.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다.

  메리 셜리(M. Shelly)는 자신이 쓴 작품과 그 주인공의 유명세로 그녀의 존재가 잊혀져 온 불행한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뿐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존재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실 하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monster)을 만든 박사(Vitor Frankenstein)의 이름이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셜리의 원작에서 괴물은 피조물(creature), 악마(devil) 등으로 불릴 뿐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언제부터인가 그 괴물은 자신을 만들어 낸 창조자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원수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생각해 보라.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원작 텍스트에 쓰여진 것보다 대중문화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런 전도(inverstion) 속에서 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텍스트 외부에서 벌어진 이런 전도는 이미 그 안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박사는 자신의 괴물이 생명을 얻던 바로 그 순간, 공포에 휩싸여 실험실을 박차고 나온다. 자신의 놀라운 지적 산물을 공포의 대상으로 마주하는 모습은 주체의 활동과 그 결과가 분리되고, 서로가 적대적 관계에 놓이는 '소외'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그 산물인 상품과 대립하고 상품에 지배당하는 소외는 전도된 표상(Vorstellung)으로 나타난다. 한 명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이 '삼성'이라는 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노동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삼성의 노동자'이다. 나아가 그의 노동은 노동을 행한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월급과 연봉이라는 표상을 요구한다. 최근 유행하는 "88만원 세대"라는 표상은 바로 이런 전도를 가리킨다. 작품이 발표된 1818년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러한 삶은 갈수록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창조자의 이름이 그 창조물로 전도되고, 나아가 그 문학 텍스트의 저자가 잊혀져 온 과정은 바로 이런 소외와 전도의 역사 속에서이다.

  물론 자신이 만든 대상을 끔찍한 공포의 존재로 마주한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이전에도 흔한 테마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역설적인 운명을 겪은 텍스트는 흔치 않다. 더욱이 그러한 전도가 작가가 아닌 대중과 대중문화에 의해, 즉 작품의 소비와 전유를 통해 이뤄져 왔다는 사실은 텍스트 그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경고: 이 글을 쓴 저는 문학이 전공도 아니고 평론가는 더욱 아닙니다. 생각나는 대로 내쳐 쓴 글이니 함부로 퍼가시면 곤란합니다. 하다못해 댓글이라고 적으시면 모르겠습니만...]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