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페리호 참사는 진정 끔찍한 사태이지만, 그렇다고 살인은 아니다.

: 아이들이 포함된 어떤 비극이라도 격한 감정을 일으킬 것이지만, 세월호의 선원들에게 “살인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Mary Dejevsky


비참했던 처음의 반응은 논외로 하면 한국의 페리호 참사 여파는 점점 그 한계까지 감정이 고조되고, 극심해지는 듯하다. 어떻게 그렇지 않겠는가? 476명의 탑승객 중에서 174명만이 구조되었다. 구조되지 못하고 남은 300명이 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고, 이들은 서울 근교의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이들은 배가 기울어지고 전복되었을 때 그 안에 갇혀있었다. 행여나 다수의 생존자들을 찾아낼 가능성은 늘 그렇지만 희박하다.


사고 발생 6일째에 이르러 국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박대통령은 일부 페리호 선원의 행동이 “살인과 다를 바 없다”며 규탄했다.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학부모나 한국민 전체가 아니라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잘못이 밝혀진 이들에게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라면 명백한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한 국가의 리더가 지지율은 물론이고 그 직위까지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시기상으로 부족했던 점을 단호한 대응으로 메우려 했다. 번역과 문화적 차이에서 있을 수 있는 복잡함을 고려하더라도 “살인”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말은 지금과 같은 재난에 대한 격한 감정을 동반한 것일 수 있다. 10대들이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나이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운 도덕적 각성을 보여준 문자들이 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흐느끼고, 분노하며 부둣가에 모인 절망에 빠진, 여전히 자식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교감 선생님은 자살을 했고, 유서에는 자신의 책임졌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은 후에 구조되어 살아 갈 수 없다고 남겼다.


분노와 슬픔의 격하게 뒤섞이는 것은 어떤 곳의 재난에서도, 특히 많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곳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경우, Aberfan의 비극을 생각해 보자. 웨일즈의 광산 마을이었던 이곳에서는 산사태로 마을의 학교가 파묻혀 100명이 넘은 아이들이 사망했다. 1966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마음의 상처가 되고 있다. 똑같이 생생한 슬픔이 러시아 남부의 Beslan에도 남아있다. 10여 년 전 여기서는 2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체첸 인질범에 손에 죽거나, 서툰 구조작전의 와중에 사망했다. 또 2008년 스촨성 지진에서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을 흐느끼게 한 분노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사고 이후 당시 지방 정부의 부패로 인해 학교 건물이 규정을 위반하여 지어졌음이 알려지자 온갖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분노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살인”이라는 비난으로 돌아와 보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었는가? Beslan에서 죽은 이들은 고의든 그렇지 않든 테러 행위로 인한 결과로 죽임을 당했다. 영국에서 Aberfan의 산사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주의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7년 193명의 목숨을 앗아간 Zeebrugge의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페리호 침몰 이후 회사의 대표는 최종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선박의 차량 출입용 램프 도어를 닫지 않은 선원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몰아가는 것에는 조심스러웠다. 사람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책임을 더 물었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는 이런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나온 공개된 녹취록들이 선장과 선임 선원의 대응에 영향을 준 혼란, 무능력과 공포를 알려주고 있지만 말이다. 응징을 원하는 부모와 대중들의 바람을 거부하긴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책임과 고의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은 다시 제기될 지도 모른다. 죽음이 실수나 공포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면, 누군가에게 살인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정당한가? 부분적으로는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살인”을 말할 때, 그 선을 어디에 그었는지는 동양에서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원문 출처: <가디언> 2014년 4월 21일자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