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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1.03 학문의 "나와바리"
  2. 2008.01.03 역사 유물론의 대상
  3. 2008.01.03 우울과 몽상
  4. 2008.01.03 개고기와 글쓰기
  5. 2008.01.03 Red, White & Blues
  6. 2008.01.03 The Road to Memp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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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발흥은, 19세기 정치학과 정치기술의 개념이 쇠퇴했던 것과 관련되어 있다. 사회학에서 진정 중요한 것 치고 정치학이 아닌 것이 없다. '정치'는 의회정치, 혹은 개인적 파벌의 정치와 동의어가 되었다. 헌법과 의회가 '자연적' '진화'의 시대를 열었으며 사회는 그 결정적인, 즉 합리적 기초를 발견했다는 신념. 보라! 이제 사회는 자연과학의 방법으로 연구될 수 있지 않은가? 이러한 관점에서 초래된 국가 개념의 빈곤화. 만약 정치학이 국가에 대한 과학이고, 국가는 지배계급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유지해 나갈 뿐 아니라 자신들이 지배하는 자들로부터 적극적인 동의를 쟁취하는데 사용하는 실천적, 이론적 활동의 총 복합체라고 한다면, 사회학의 근본적 문제들이란 곧 정치학의 문제들에 불과한 것임이 분명하다...."

Antonio Gramsci, <옥중수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가진 고유한 특징이 분업의 시, 공간적 가속화라면, 속칭 학문의 "나와바리" 역시 그러한 분업의 요구에 맞추어 끊임없이 분열과 융합을 거듭한다. 어떤 경우는 그 학문의 고유한 영역이 새로 생긴 학문에 분할되고, 그 분할은 처음의 학문이 삼았던 결정적 대상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 결과, 양쪽 모두가 애초에 풀기를 바랬던 문제에 대해 '분할'을 근거삼아 그것은 이미 지나간(혹은 이미 풀린) 문제라고 넘겨 버리는 사태가 발생한다.

  이런 사태는 흔히 실용학문이라 불리우는 영역에서 가장 빈번히 등장한다. '신문방송', '행정', '문화콘텐츠'..등등. 이들은 분업의 가속화에 따른 당대의 기술적 요구로서 등장하며, 이런 이유로 애초에 어떤 특정한 학문으로부터 떼어올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 분할시킬 영역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어느 학문분야에서건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할 것이 무한대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르면, 결국 이들 신생학과들은 그곳에 밥줄을 대려는 지식인들의 싸움터가 될 뿐이다. 그러한 싸움에 동참하지 않는 이들은, 오만하거나 현실을 모르는 철없는 애송이로 취급될 뿐이다.

  그람시의 말을 따르자면, 정치학은 자신들의 중요한 문제를 사회학에 떠 넘김으로써 "의회정치, 개인적인 파벌의 정치"만을 다루게 되었다. 결국, 신문방송학에서는 이 핵심을 잃어버린 정치를 가져와 "정치 커뮤니케이션", "정치광고"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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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주의자가 범죄소설을 분석하는 데 시간을 소비한다는 것이 경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나로서는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변명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역사유물론은 모든 사회현상에 적용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어떤 연구라도 본성상 다른 연구보다 가치가 덜한 것은 없다. 역사유물론이라는 이론의 권위- 그리고 이 이론이 타당하다는 증명 -는 다만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설명해 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범죄소설의 역사는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와 얽혀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회적 역사이다. 왜 범죄소설이라는 특정한 문학장르의 역사에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가 반영되고 있느냐고 질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즉,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는 사유재산의 역사이기도 하며 사유 재산의 부정, 즉 간단히 말해서 범죄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르주아 사회의 역사는 개인들의 욕구나 정서, 그리고 기계적으로 부과된 사회 개량주의의 형태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모순의 역사이기도 하거니와, 범죄 속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사회 안에서 부르주아 사회 자체가 범죄를 조성하고, 범죄를 가져오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에는, 아마도 부르주아 사회가 범죄 사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Ernest Mandel <즐거운 살인>

  "정치경제학자가 쓴 대중문화 비평이라..." 처음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어네스트 만델이라는 이름 탓에 노학자가 말년에 장난처럼 쓴 에세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첫장의 서문부터 내 짐작이 틀렸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델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열 여덞살의 나이로 제4인터내셔널의 조직원이 되었고, 나찌와 스탈린 하에서 투옥을 감수하면서도 평생을 노동, 학생운동에 관심을 저버리지 않은 한 명의 맑시스트였던 만델을 말이다.

  "범죄소설의 사회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분명 추리소설이나 범죄 스릴러에 열광하는 팬들에게 결코 유쾌한 책이 아니다. 몇 편의 인터넷 서평을 뒤져보면, 한마디로 "뭐 이런 책이 다 있냐..."로 정리할 수 있다. 2001년에 우리말 번역 1쇄가 나와서 아직도 소식이 없는 걸보면 흥행실패는 분명한 듯 하다.

  흥행실패의 원인은 아마도 이 책이 "범죄소설을 통해 본" 현대 자본주의 발전사였기 때문인 듯 하다. 만델의 표현대로 부르주아 사회는 곧 범죄의 사회이다. 넘쳐나는 잉여를 공평히 분배하지 못한다는 사실 자체에서, 대공황이라는 자본의 운명에서, 이미 이 사회는 어떤 식으로든 범죄를 배태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며 범죄소설은 이러한 운명의 도피적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드가 앨런 포와 코난 도일에서 시작한 경쟁 자본주의 시기의 추리소설에서 국가, 기업, 조폭들의 총체적인 범죄카르텔을 묘사하는 "로빈 쿡"류의 스릴러까지 만델의 범죄소설 분석은 그야 말로 불타는 범죄의 연대기이다. 놀라운 점은 정치경제학이라는 '딱딱한 학문'을 전공한 만델이 악당과 탐정의 유형, 서사의 전개, 소설의 공간적 배경, 사건의 소재까지 광범위하게 보여주는 "인문학적 분석력"이다. "007"의 탄생에서 시장의 확대와 경제적 인간의 합리성이 쇠퇴한 증거- 활동 무대의 세계화, 셜록홈즈와 같은 논리적 추리력을 수사기관의 조직력으로 대체하는 것 -를 보여주는 능력은 대개의 정치경제학자들에게 기대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만델이 보여준 범죄소설의 사회사는 단지 소설의 영역에만 국한될 수는 없다. "도망자"와 같은 헐리우드 스릴러물이나 "대부",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아메리카" 와 같은 영화 역시 만델의 주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의 말대로 "역사 유물론이 적용될 수 있는 대상과 그렇지 못한 대상의 차이가 어디에 있겠는가?"

ps: 행여 이런 글을 읽고 경제 결정론 운운하지 마시길 바란다. 일단 읽고 말씀해 주시길... 장담컨대 금방 읽으실 수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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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깃털 없는 두 발 짐승'중의 하나인 털 뽑힌 닭이 왜 자신이 내린 정의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이와 비슷한 어떤 의문에도 신경 쓰지 않겠다.
인간은 사기치는 동물이며, 인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동물도 사기치지 않는다. 이 차이를 극복하려면 털 뽑힌 닭이 닭장 한 가득은 있어야 할 것이다.
사기의 본질과 법칙을 구성하는 것은 사실 코트와 바지를 착용하는 생물종에게 고유한 것이다. 까마귀는 훔친다. 여우는 속인다. 족제비는 등쳐먹는다. 하지만 인간은 사기친다. 사기는 인간의 운명이다. 어떤 시인은 '인간은 한탄하게끔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기치게끔 되어 있다. 이것이 목표이자 대상이고 끝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람이 사기를 쳤을 때, 우리는 그가 '해냈다'고 말한다....."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 <사기술> 중에서.

1849년 10월 7일 새벽 5시.
평생을 정신발작과 알콜중독에 시달렸고, 도벽과 갖은 여인들과의 스캔들로 평온한 결혼생활이라곤 없었던 한 남자가 3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의사 한 명 뿐이었다.

우리에겐 "검은 고양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설로 유명한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의 마지막은 그랬다. 그토록 사랑했던 첫사랑과의 결혼을 앞두고 5일 동안 볼티모어의 어딘가를 헤메던 그를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했던 때는 그가 죽기 닷새 전이었다. 그가 죽은지 150년이 넘어 내 손에 그의 소설전집이 들어왔다. 8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책은 포의 환상과 공포, 풍자와 추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흔히 공포소설로만 알려져 있는 포의 이 단편집은, 그가 "검은 고양이"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광기의 깊이를 어떻게 풍자와 환상에 녹여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풍자건 환상이건 그 속엔 항상 인간의 광기와 이성이 혼재한다. 정신병자들의 난동이 주는 놀라움, 당대 출판/문학계에 대한 풍자의 잔인함, 뒤팽의 추리가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우리 감정의 표현이 다름을 말할 뿐 그 깊이는 한결같이 포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 페이지 안되는 짦은 단편들이 보여주는 무서울 정도의 응집력이다. <고자질하는 심장>은 단 일곱 페이지 속에 살인의 과정과 검거장면까지의 회상이 어느 문장 하나 버릴 것 없이 채워져있다. 아마도 이 일곱페이지로 영화 한편을 만들 수도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Led Zepplin의 "Stairway to Heaven"과 같은 대곡 보다는 "Heartbreaker"처럼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짦은 곡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이뿐일까...비록 번역체이긴 하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언어의 유희, 추리 소설에서 번뜩이는 심리분석, 풍자에서 보여주는 해박함과 예리함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나친 평일지는 몰라도 <도둑맞은 편지>야 말로 100여 년 후의 알튀세가 말했던 "볼 수 있는 것(vision)"과 "볼 수 없는 것(non-vision)"의 경계가 무엇인지 뚜렷히 보여주는 수작이 아닐런지.

이 소설 전집의 제목이 "우울과 몽상"이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두 단어가 포의 작품들을 내포하기엔 부족할 듯 싶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 이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ps: 전혀 예상치 못한(?) 후배가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 헌책인 탓에 더 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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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의 생각이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얻어낸 것을 바로 솔직하게 자기 말로 쓴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들은 것, 글로 읽은 것, 어른들이 말해주는 어른들의 생각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자기 몸으로 겪은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넣어 놓은 지식을 (그러니까 몸속에 들어가 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그대로 쏟아내어 놓은 것이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이 쓰고 있는 논술문이란 것이 이래서 문제가 된다. 이런 글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가 될 수 없고, 머리로 꾸며 만들거나 정리하는 것, 손끝으로 만드는 잔재주, 그야말로 '솜씨자랑'이라는 하는 것이요, 행동은 할 줄 모르고, 하기를 싫어하고 입만 살아서 근사하게 지껄이고, 공중에 뜬 논리와 변설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하는 글짓기 공부다"
이오덕, "개고기 논쟁을 살펴본다", 당대비평24호,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 中

  몇 년 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유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방송에서 한국을 가리켜 "개를 먹는 무식한 야만인의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 글 좀 쓰신다는 분들은 이에 분개하시어 문화의 상대성을 논하시고 급기야 어린이들까지 한겨레 교육란 등에 기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글에서 진중권, 강수돌 등 "어른"들의 글과 어린이들의 글에 대한 논평으로 개이건 소이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위의 글은 신문에 기고된 어린이들의 글에 대해 쓰신 것인데, 이런 호된 꾸지람을 들은 글은 이렇게 쓴 것이다.

"1월 7일에 실린 유효정 양의 생각과 다르기에 글을 쓴다. 월드컵이 앞으로 5개월 다가오자 외국 언론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비평이 심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고기 문제인데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하여 야만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개고기를 먹는 데에 찬성한다. 첫째, 개고기 음식문화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소를 농사를 짓는데에 주로 사용을 했다. 그래서 소를 잡아먹게 되면 결국 그 힘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개고기를 먹었던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잔칫상에 개고기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둘째, 우리나라는 애완용이 아닌 잡종개를 먹는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 못지않게 개를 사랑하고 보호한다. 우리가 애완용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된 인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우리나라의 개고기 음식문화를 야만인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인종차별 논리이다. 유럽인들은 말의 내장과 양의 눈알을 최고의 맛으로 치고, 프랑스 사람은 부풀린 거위의 간을 최고의 음식으로 치지 않는가?
프랑스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우리나라에 대하여 미개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적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아무리 야만적이고 미개하다 해도 우리의 전통 문화를 끝까지 이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주 운천초등학교 5학년 장**(한겨레신문 2002년 1월 21일자)

  그렇다면...이오덕 선생님이 "머리에 쑤셔넣은 지식이 아니라 몸에서 터져 나온 글, 살아 있는 말로 쓴 글"이라 칭찬하신 글은?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내가 5학년 때 1년 동안 '쌧바따"라는 개가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명태 머리를 던지면 앞발을 들며 잘 받아먹기 때문이다. 다른 개는 못 받아 먹을 것이다.
그때가 초겨울이었다. 난 그 개를 데리고 마늘밭으로 가서 장난치며 싸우기도 하였다. 손만 가면 무는 그 개의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나는 꾀를 썼다.
개는 나를 무척이나 겁낸다. 다른 애들 같으면 짖고 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쫓아 놓고 다리를 쥐어서 당기는 꾀를 썼으나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부터 개를 사랑했다. 다른 개를 보아도 사랑을 준다. 이윽고 1980년 10월 10일. 그 개를 사람이 잡아먹기로 했다. 2만 5천원에 팔았다. 나는 이때 책상에서 울었다. 아버지께서 "누가 우노?"하시며 "왜 우노 야야"하셨다. "개를 잡아 가" 나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때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이튿날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났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내가 울었다고. 그 후 순칠이가 와서 말했다. 순칠이도 옛날에 큰 개가 있었는데 그 개도 잡아먹었다고 한다. 순칠이도 그 때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개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랑말랑 한다."

안동 임동동부초등학교 6학년 이**(창비아동문고 우리 집 토끼)

  아이들 글만 이럴까...우리나라 논술업계에 잠시나 기여한 건 그렇다쳐도 논문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머리 속에 이유도 없이 쑤셔넣은 지식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중에서 어떤 것을, 왜 써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글을 쓴다는 것. 반성이 필요한게다.
Posted by WYWH
2008. 1. 3.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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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보급율로 따지자면 세계2위를 달린다는 우리나라에서 다른 것은 모르겠으나 음악 매니아들을 만족시켜 주는 건 단연 P2P 일듯하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 때 냅스터가 희귀음반이나 부틀렉(Bootleg)들의 보물창고였듯이 말이다. 그러나 80년대까지만 해도 소위 두꺼운 판지에 앨범 자켓을 복사해 붙여놓은 "빽판"들이 청계천과 세운상가 2층 도처에 널렸으니, 나 같이 조숙한(?) 자칭 "언더 음악 매니아"들의 냅스터는 그런 곳이었다. 물론 그곳에 가기 위해선 깍뚜기 입성을 준비하는 형님들의 문화 비디오 구매 공세(때로는 협박)가 있었지만, 어렵사리 구한 핑크 플로이드 빽판 한장으로 다음날 무지몽매한 중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겠다는 사명은 놀라운 용기를 낳았던 것이다!! 이런 기억을 새롭게 해준 다큐멘터리가 있었으니...바로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의 Red, White & Blues이다.

  BLUES 다큐멘터리 7부작 중 한편인 이 영화에서 마이크 피기스(Mike Figgis)는 미국 블루스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 유입된 경로와 60년대 소위 White Boy Blues가 다시 미국으로 역수출되는 블루스의 연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말하자면 "불타는 블루스의 연대기"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사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블루스 하면 떠올리는 것은 B.B King과 같은 전통적인 미국 흑인의 블루스가 아니라 영국의 에릭 클랩튼을 위시한 60년대의 Blues Revival 시기의 곡들이다. 이렇게 본다면 블루스가 전세계적인 장르가 되는데 결정적이었던 시기가 바로 이 때였을 것이다.

  1950년대 쯤으로 추정이 되는 미국 흑인들의 블루스가 정작 자국에서 침체기에 들어섰을 때, 대서양 건너 영국의 뮤지션들은 이 투박하고 단순한 장르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영화에서 누군가의 말처럼 "영국 뮤지션들은 미국이 버린 쓰레기에서 예술을 발견했던 것"이다. 물론 이들은 그 전에 스키플이나 블루 그래스와 같은 전형적인 백인들의 대중음악을 듣기도 했지만 이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똑같이 단순한 형식을 가졌어도 블루스만이 갖고 있는 단순한 박자와 구성에서 누릴 수 있는 무한한 변주에 매력을 느낀 탓은 아닐지.

  이들이 미국 흑인의 전유물이었던 블루스를 흡수한 자세한 행적과 증언들이 이 다큐멘터리의 중심을 이룬다. 이른바 1960년대 Blues Revival에 대한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는 이 영화는 나아가 하나의 대중문화 장르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변이되어 다시 회귀하는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중요한 기록물이기도 하다. 블루스라는 장르가 영국에 유입된 경로, 즉 미국 블루스 뮤지션들의 유럽투어 및 해적판의 청취로 시작되어, 악보도 없이 레코드와 라디오 만으로 기타 주법을 연습하고, 클럽에서의 연주와 레코드 취입까지. 그리고 이들이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흑인들만의 공간에서 그들의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원래 미국 흑인들의 것이었던) 블루스를 연주하게 된 상세한 경로가 그 주역들의 증언으로 펼쳐진다. 앞서 내가 주절거린 80년대의 추억은 당시 에릭 클랩튼이나 존 메이욜 등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한다. 에릭 클랩튼은 당시 빽판(영화에선 Vinyl)을 쌌던 싸구려 골판지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거...진짜 두꺼웠어요..."

  에릭 클랩튼, 잭 브루스, 진저 베이커(이상 크림 Cream), 존 메이올, 밴 모리슨, 제프 백, 피터 그린 등은 미국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에 대한 그들의 기억과 감탄을 회상한다. 이 회상의 중간 중간에 그 유명한 "Abbey Road Studio"에서 펼쳐지는 톰 존스와 밴 모리슨, 제프 백의 연주는 이들이 어떻게 블루스를 현재까지도 그들의 음악에 녹여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깊은 장면이었다.

  하나의 대중문화 장르가 유입되고 재생산되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는 이 묘한 구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중문화의 이식과 그 역수입이라는 경로를 이 토록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도 찾기 힘들 듯 하다. 만일 우리의 국악을 중국인이 재해석하고 변형하여 우리나라에서 공연한다고 생각해 보자. 이들에게 우리는 무한한 감사를 느낄 수 있을까? 미국의 경우, 그것도 인종차별이 여전히 심하던 60년대에 미국인도 아닌 영국인이 그것도 백인들이 흑인들의 음악적 공간에 진입할 수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ps: "세운상가의 추억"에 뽀너쓰! 사실 한번은 강제로 "은하철도 999" 딱지가 붙은 문화 비디오를 산 적이 있다. 아는 사람 다 알겠지만, 그건 진짜 "은하철도 999"였다. 자기들과 같은 길을 가길 바라지 않으신 세운상가 2층 형님들의 그런 마음 씀씀이을 생각하면....욕이 나올려구 한다!

Posted by WYWH
2008. 1. 3.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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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는 90%가 흑인이었어요. 이번엔 서필모어로 갔었죠... 머리가 긴 백인들만 보이더군요....사회자가 '신사숙녀 여러분 최고의 권위자 B.B. 킹을 소개합니다.'라고 하니 전부 일어섰어요.... 전부... 핀소리까지 들렸어요..... 모두 일어났죠..... 제 삶에서 그런 일은 한번도 없었어요. 모두 일어나더니 박수를 치기 시작했죠. 너무 감동받아서 견딜 수가 없었죠. 전 가만히 서서 울기 시작 했어요. 45분 간의 연주 시간 동안 전 서너 번의 기립박수를 받았어요. 그리고 제가 떠날 때가 됐을 때 다시 일어서더군요. 그렇게 다른 종류의 관객 앞에서 연주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날 밤은 90%의 흑인관객 대신에 95% 정도의 백인 관객이 있었죠. 난생 처음이었요. 그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다면 좋겠군요..."

B.B King

  THE BLUES 7부작 중 블루스에 가장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고르라면 Richard Pearce의 "멤피스로 가는 길(The Road to Memphis)"를 들고 싶다. 멤피스로 간다는 것은 블루스의 고향 중 하나로 간다는 의미 뿐 아니라, 그 길을 되짚어 가며 떠올리는 블루스의 역사 그 자체가 또 하나의 12마디 블루스임을 보여준다. 때로는 이미지들의 이어짐과 내러티브가 마치 악보의 구성처럼 인트로, 중간 소절, 후렴구, 그리고 마무리를 느끼게 해줄 수 있다는 것은 영상과 음악 예술이 동일한 형식으로 수렴될 수도 있음을 알게 해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세 인물은 50년 대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Beale Street)에서 함께 활동하던 벗들이다. 시작은 같았던 이 세 명은 멤피스로 돌아와 귀향공연을 준비하는 지금, 너무도 다른 그러나 어찌보면 동일한 길을 걸어 일흔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다. 오래 전 그래미상에 노미네이트 된 경력으로 미 전역을 돌며 생계를 이어가는 바비 러쉬(Babby Rush), 빌 스트리트의 전성기가 끝났을 무렵 뉴욕으로 가 세탁일로 살아온 로스코 고든(Rosco Gordon), 그리고 블루스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비비 킹(B.B King)이 그들이다. 서로 다른 항로를 지나온 이들의 추억과 회상이 이 영화의 대부분을 이루지만, 글 앞에 인용한 비비 킹의 회고는 그들 모두가 겪었던, 아니 미국인들 모두가 겪었던-- 그리고 지금도 겪고 있는 -- 인종차별의 역사와 블루스의 험난한 여정을 생생히 증언해 준다. 비비킹은 빌 스트리트에서 당시로선 모험에 가까웠던 라디오 방송국의 "흑인" DJ로 시작하여 필모어 웨스트 공연(68년)에서 난생 처음 백인 관객들의 환호를 받게 된다.

  어찌보면 인종차별의 역사보다 식민의 경험과 지역감정의 분리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같은 영토 내에서 피부색이 처 놓은 삶과 음악의 게토(ghetto) 속에 살아온 이들의 회상은, 비비킹처럼 성공한 아티스트건, 지금은 피아노의 Key마저도 잊은 할아버지건(로스코 고든), 다니는 곳마다 개런티 흥정으로 속을 앓는 왕년의 스타건(바비 러쉬) 현재의 모습에 상관없이 다시 멤피스로 모이게 하는 상처이자 자양분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래서 영화 막바지에 멤피스의 클럽 공연은 현재의 위치에 상관없이 그들의 삶을 버텨온 모진 인내와 열정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한 감동을 준다.

  그러나 마치 블루스 연주가 마지막 소절에서 처음의 패턴으로 돌아가 듯, 영화의 마지막은 다시 동일한 세 명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시 어디론가 떠나는 순회공연 버스 안의 피곤과 결국엔 다시 블루스로 돌아오지 못한 세탁소 늙은이의 장례식이 그것이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vista Social Club)"의 엔딩은 환호와 회한으로 새로운 시작의 희망을 주었다면, 이 "멤피스로 가는 길"은 그런 희망을 던져주지 않는다. 그저 모두 알고 있듯, 한 차례의 환호 이후 이전과 다름없는 고단한 일상이 있음을 결코 감추지 않는 것이다. 이 영화의 미덕이자 동시에 그 리얼리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이 내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가장 블루스에 가까운 영화, 아니 블루스 그 자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