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더 마인드] 영어판 표지

Peter Godfrey-Smith, 김수빈 옮김(2019), 『아더 마인즈: 문어, 바다, 그리고 의식의 기원』, 서울: 이김

 

문어 한 마리가 표지에 그려진 책이 한 권 있다.  「문어, 바다, 그리고 의식의 기원」이라는 부제만으로는 내용을 짐작하기 어렵다. 문어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독일대표팀의 승패를 예언했다는 ‘파울’(Paul)을 떠올릴 수 있겠다. 문어의 지능을 이야기하는 책이라면 생물학 대중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바다’라는 단어는 기후나 생태 위기에 대한 경고를 연상시킨다. 그런데 갑자기 ‘의식’이 나온다. 세 단어의 연관도 아리송한데, 저자 소개를 보면 더 난감하다. 생물철학과 정신철학 전공자라니. 민트초코치킨만큼이나 짐작이 안되는 분야다. 

 

민트초코치킨 같은 분야를 전공한 저자는 피터 고프리스미스(Peter Godfrey-Smith)이며 문어를 표지에 넣은 그의 책은 『아더 마인즈(Other Minds)』이다. 이런 책을 읽기로 작정하는 사람은 두 유형 밖에 없겠다. 저자의 ‘명성’을 잘 아는 민트초코치킨 전공자이거나, 아니면 과감하게 민트초코치킨 맛을 보겠다고 덤비는 무모한 야식 중독자다. 어떤 경우든 일찌감치 수학과 담을 쌓은 내 친구와는 다른 사람일 것이다. 

 

과장이 아니다. 이 책은 절대로 대중서가 아니다. 표지에 그려진 문어에 속으면 안 된다. 저자인 고프리스미스는 호주 동부 해안에서 스쿠버다이빙을 하며 찍은 문어와 대왕갑오징어 사진을 보여주고 절대 어려운 얘기가 아니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럴 때는 그냥 스쿠버다이빙만 가르쳐 달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이 책은 호주 동부 해변에서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보다 “민트초코치킨 정도는 아니지만 나도 통닭이나 오골계 정도는 안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진화생물학, 해양생물학, 신경과학, 고생물학을 오가며 수시로 지각, 감각, 경험과 의식이란 대체 무엇인지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철학으로 답한다. 그래서 이 책의 서평 또한 저자에 대한 복수의 심정으로 내가 그나마 조금 안다는 커뮤니케이션 이론과 대조하며 쓰려 한다. 그러니까 이 서평은 새벽 1시 쯤에 잘못 배달된 민트초코치킨을 오골계 백숙이라 생각하며 억지로 먹어본 경험의 기록이다.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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