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불교, 천주교와 같은 종교보다 2022년 한국에는 더 강력한 종교가 있다. 정치와 언론, 정확히 말해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 언론이라는 종교다.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 언론은 시민이 바라는 이상적이며 완성된 정치와 언론의 상이다. 마치 종교가 억압받는 이들에게 천국의 완벽한 삶을 약속하듯,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 언론은 현실의 정치와 언론이 닿아야 할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독재에 맞선 영웅 신화와 고착화된 거대 양당 체제는 대통령을 민중(people), 또는 시민(citizen)의 열망을 투영하는 인격체로 만들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서로 다른 열망을 반영했다. 김대중은 박정희 정권에 맞섰던 민중의 항거가 낳은 정권교체의 상징이, 노무현은 신군부에 맞섰던 87년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시민의 열망이 투영되고 좌절된 상징이었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어떠했는가. 이들의 독재와 불통은 ‘한강의 기적'을 만든 제왕의 혈통에 대한 숭배에서 얼마든지 눈감을 수 있는 흠결이었다. 이들의 적통을 잇는다는 두 정당은 이 인격체를 수호하고 재생산하는 폐쇄적인 정치 단위가 되었다.

대통령을 향해 시민의 열망을 투영하는 경로가 바로 언론이다. 이 열망의 투영은 두 가지 방향으로 작동한다. 한 축은 ‘사실에 근거하여' 자신들이 지지하는 대통령의 편을 드는 언론이며, 다른 한 축은 양당체제에서 대통령 선거를 놓고 경쟁하는 정당을 적으로 만드는 언론이다. ‘우리와 그들'이라는 구도에서 공정 언론은 두 정당, 두 후보에 대한 정파적 균형을 뜻한다. 우리 편의 잘못 만큼 그들의 잘못도 지적해야 한다. 우리에 대해 비판하는 언론은 그들 편을 드는 언론으로 사라져야 할 절대 악이다.

다수 언론은 이러한 정파적 열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어떤 언론은 자신이 ‘공정 언론'이라는 종교의 전도사가 되기를 서슴지 않는다. 공정 언론이라는 낙원은 발 딛고 선 땅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 한탄하는 근거가 된다. 이들을 위한 예배당이 바로 ‘합리적 의혹'과 ‘가려진 진실'을 밝히겠다는 TV와 유튜브 채널들이다.

유튜브 채널 <전광훈 TV> [국민혁명당 LIVE] 화면 캡쳐


“마귀들과 싸울지라 죄악 벗은 형제여. 담대하게 싸울지라 저기 악한 적병과…” 같은 찬송, 문서와 사진을 흔들며 의혹이 진실임을 주장하는 간증, 그리고 악마를 향한 분노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고, 수퍼챗으로 헌금을 내면 예배가 끝난다. 반복되는 일상과 회사에 갇힌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는 이 예배당에서 신도와의 친교로 맺어지고 공정 언론을 향한 십자군을 결성하기도 한다.

예배당을 나온 신도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도 신도가 아닌 사람들, 그러니까 대통령 선거결과가 월세값 인상보다 의미가 없는 사람들, 공정 언론보다 감염병과 산업재해 대책 보도가 더 필요한 사람들은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다. 행여 이런 사람을 만나면 ‘전도'에 나서기도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환상이 아니라 공정 언론과 제왕적 대통령을 위한 제단이다. 제단이 없으면 제사장도, 신도도 없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길 바라는 기도문은 그렇지 못한 정치와 언론에 대한 비판으로, 예컨대 시민의 열망을 온전히 담은 인격체의 창출과 공정 언론을 위한 대책으로 나아간다. 진보 종편의 꿈은 더 큰 예배당을 향한 소망이지만, 개척교회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사실은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 언론이라는 낙원으로 현실을 비판하는 신앙은 그 낙원을 꿈꾸게 한 현실의 실상을 잊게 만든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과연 당연한 것인지, 이를 배출할 굳건한 양당체제가 정말 시민의 넓은 정치적 지향을 대의하는지 묻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정치 세력에게 ‘공정’은 무엇인지, 왜 언론은 표면적이고 선정적이며 인용이 쉬운 기사만을 쏟아내는지, 그럼에도 이들이 여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는 무엇인지도 묻지 않는다.

분명히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언론이라는 종교는 사람들, 특히 신도들에게 평안을 안겨준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도, 우유부단한 대통령과 편파적인 언론에 받은 상처의 진통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통제의 약효는 오래가지 않고, 더 많은 투여량이 필요해 진다.

정말 필요한 것은 정치와 언론이라는 종교가 만들어진 현실의 개혁이다. 양당체제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의 해체, ‘매체 영향력’이라는 무형 자산으로 수익을 내는 뉴스 콘텐츠 시장의 재편, 자본가 유한계급의 대리 여가를 수행하는 부속품으로 전락한 언론의 지배구조 개혁이 그것이다. 제왕적 대통령과 공정 언론을 숭배하는 신앙은 바로 이런 개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

마르크스가 말했듯 “천상의 비판은 지상의 비판으로, 종교의 비판은 법의 비판으로, 신학의 비판은 정치의 비판으로 전환"(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되어야 할 때, 비판은 어떤 행위인지 다시 고민할 때다.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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