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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깃털 없는 두 발 짐승'중의 하나인 털 뽑힌 닭이 왜 자신이 내린 정의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다른가 하는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이와 비슷한 어떤 의문에도 신경 쓰지 않겠다.
인간은 사기치는 동물이며, 인간을 제외하고는 어떤 동물도 사기치지 않는다. 이 차이를 극복하려면 털 뽑힌 닭이 닭장 한 가득은 있어야 할 것이다.
사기의 본질과 법칙을 구성하는 것은 사실 코트와 바지를 착용하는 생물종에게 고유한 것이다. 까마귀는 훔친다. 여우는 속인다. 족제비는 등쳐먹는다. 하지만 인간은 사기친다. 사기는 인간의 운명이다. 어떤 시인은 '인간은 한탄하게끔 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그렇지 않다. 인간은 사기치게끔 되어 있다. 이것이 목표이자 대상이고 끝이다. 이러한 이유로 어떤 사람이 사기를 쳤을 때, 우리는 그가 '해냈다'고 말한다....."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 <사기술> 중에서.

1849년 10월 7일 새벽 5시.
평생을 정신발작과 알콜중독에 시달렸고, 도벽과 갖은 여인들과의 스캔들로 평온한 결혼생활이라곤 없었던 한 남자가 3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임종을 지켜본 사람은 의사 한 명 뿐이었다.

우리에겐 "검은 고양이"라는 무시무시한 소설로 유명한 에드가 알란 포(Edgar Allan Poe)의 마지막은 그랬다. 그토록 사랑했던 첫사랑과의 결혼을 앞두고 5일 동안 볼티모어의 어딘가를 헤메던 그를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했던 때는 그가 죽기 닷새 전이었다. 그가 죽은지 150년이 넘어 내 손에 그의 소설전집이 들어왔다. 800페이지를 넘는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책은 포의 환상과 공포, 풍자와 추리의 모든 것이 담겨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흔히 공포소설로만 알려져 있는 포의 이 단편집은, 그가 "검은 고양이"에서 보여준 충격적인 광기의 깊이를 어떻게 풍자와 환상에 녹여내고 있는지 보여준다. 풍자건 환상이건 그 속엔 항상 인간의 광기와 이성이 혼재한다. 정신병자들의 난동이 주는 놀라움, 당대 출판/문학계에 대한 풍자의 잔인함, 뒤팽의 추리가 보여주는 경이로움은 우리 감정의 표현이 다름을 말할 뿐 그 깊이는 한결같이 포의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몇 페이지 안되는 짦은 단편들이 보여주는 무서울 정도의 응집력이다. <고자질하는 심장>은 단 일곱 페이지 속에 살인의 과정과 검거장면까지의 회상이 어느 문장 하나 버릴 것 없이 채워져있다. 아마도 이 일곱페이지로 영화 한편을 만들 수도 있을 듯 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Led Zepplin의 "Stairway to Heaven"과 같은 대곡 보다는 "Heartbreaker"처럼 놀라운 집중력을 보여주는 짦은 곡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다.) 이뿐일까...비록 번역체이긴 하지만 곳곳에서 느껴지는 언어의 유희, 추리 소설에서 번뜩이는 심리분석, 풍자에서 보여주는 해박함과 예리함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지나친 평일지는 몰라도 <도둑맞은 편지>야 말로 100여 년 후의 알튀세가 말했던 "볼 수 있는 것(vision)"과 "볼 수 없는 것(non-vision)"의 경계가 무엇인지 뚜렷히 보여주는 수작이 아닐런지.

이 소설 전집의 제목이 "우울과 몽상"이다. 누가 붙였는지 모르겠지만, 이 두 단어가 포의 작품들을 내포하기엔 부족할 듯 싶다.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면 이 이상은 결코 없을 것이다.

ps: 전혀 예상치 못한(?) 후배가 이 책을 선물로 주었다. 헌책인 탓에 더 정이 간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