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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들의 생각이 자기 삶에서 진정으로 얻어낸 것을 바로 솔직하게 자기 말로 쓴 것이 아니라 방송에서 들은 것, 글로 읽은 것, 어른들이 말해주는 어른들의 생각들을 그대로 썼기 때문이다. 자기 몸으로 겪은 것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머리 속에 넣어 놓은 지식을 (그러니까 몸속에 들어가 제 것으로 되어 있지 않은 것을) 그대로 쏟아내어 놓은 것이다 보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다. 요즘 아이들이 쓰고 있는 논술문이란 것이 이래서 문제가 된다. 이런 글은 삶을 가꾸는 글쓰기 공부가 될 수 없고, 머리로 꾸며 만들거나 정리하는 것, 손끝으로 만드는 잔재주, 그야말로 '솜씨자랑'이라는 하는 것이요, 행동은 할 줄 모르고, 하기를 싫어하고 입만 살아서 근사하게 지껄이고, 공중에 뜬 논리와 변설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이 되게하는 글짓기 공부다"
이오덕, "개고기 논쟁을 살펴본다", 당대비평24호, 이오덕 선생님을 그리며 中

  몇 년 전 돌아가신 이오덕 선생님이 남기신 유고다. 2002년 월드컵 당시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짓 바르도가 방송에서 한국을 가리켜 "개를 먹는 무식한 야만인의 나라"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 한국에서 글 좀 쓰신다는 분들은 이에 분개하시어 문화의 상대성을 논하시고 급기야 어린이들까지 한겨레 교육란 등에 기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 글에서 진중권, 강수돌 등 "어른"들의 글과 어린이들의 글에 대한 논평으로 개이건 소이건 "생명"에 대한 소중함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위의 글은 신문에 기고된 어린이들의 글에 대해 쓰신 것인데, 이런 호된 꾸지람을 들은 글은 이렇게 쓴 것이다.

"1월 7일에 실린 유효정 양의 생각과 다르기에 글을 쓴다. 월드컵이 앞으로 5개월 다가오자 외국 언론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비평이 심해지고 있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개고기 문제인데 개고기를 먹는 것에 대하여 야만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개고기를 먹는 데에 찬성한다. 첫째, 개고기 음식문화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기 때문에 소를 농사를 짓는데에 주로 사용을 했다. 그래서 소를 잡아먹게 되면 결국 그 힘든 일을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개고기를 먹었던 것을 알 수 있는 자료는 많다. 혜경궁 홍씨 회갑연 잔칫상에 개고기가 올랐다는 기록이 있다. 둘째, 우리나라는 애완용이 아닌 잡종개를 먹는다. 우리나라도 다른 나라 못지않게 개를 사랑하고 보호한다. 우리가 애완용을 먹는다는 것은 상대방의 잘못된 인식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우리나라의 개고기 음식문화를 야만인이라고 하는 것은 문화인종차별 논리이다. 유럽인들은 말의 내장과 양의 눈알을 최고의 맛으로 치고, 프랑스 사람은 부풀린 거위의 간을 최고의 음식으로 치지 않는가?
프랑스의 브리지트 바르도가 우리나라에 대하여 미개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문화적 우월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나라에서 아무리 야만적이고 미개하다 해도 우리의 전통 문화를 끝까지 이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청주 운천초등학교 5학년 장**(한겨레신문 2002년 1월 21일자)

  그렇다면...이오덕 선생님이 "머리에 쑤셔넣은 지식이 아니라 몸에서 터져 나온 글, 살아 있는 말로 쓴 글"이라 칭찬하신 글은?

"나는 개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 집에는 내가 5학년 때 1년 동안 '쌧바따"라는 개가 있었다. 나는 그 개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왜냐하면 명태 머리를 던지면 앞발을 들며 잘 받아먹기 때문이다. 다른 개는 못 받아 먹을 것이다.
그때가 초겨울이었다. 난 그 개를 데리고 마늘밭으로 가서 장난치며 싸우기도 하였다. 손만 가면 무는 그 개의 이빨은 매우 날카롭다. 나는 꾀를 썼다.
개는 나를 무척이나 겁낸다. 다른 애들 같으면 짖고 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쫓아 놓고 다리를 쥐어서 당기는 꾀를 썼으나 되지 않았다.
나는 그 때부터 개를 사랑했다. 다른 개를 보아도 사랑을 준다. 이윽고 1980년 10월 10일. 그 개를 사람이 잡아먹기로 했다. 2만 5천원에 팔았다. 나는 이때 책상에서 울었다. 아버지께서 "누가 우노?"하시며 "왜 우노 야야"하셨다. "개를 잡아 가" 나는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다. 이 때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 이튿날 사람들로부터 소문이 났다. 심지어 아이들까지 내가 울었다고. 그 후 순칠이가 와서 말했다. 순칠이도 옛날에 큰 개가 있었는데 그 개도 잡아먹었다고 한다. 순칠이도 그 때 울었다고 한다.
나는 그 후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 혼자 있고 싶었다. 그래서 개를 생각하면 화가 난다.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올랑말랑 한다."

안동 임동동부초등학교 6학년 이**(창비아동문고 우리 집 토끼)

  아이들 글만 이럴까...우리나라 논술업계에 잠시나 기여한 건 그렇다쳐도 논문을 쓰다보면, 어느 순간 내가 머리 속에 이유도 없이 쑤셔넣은 지식을 나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중에서 어떤 것을, 왜 써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글을 쓴다는 것. 반성이 필요한게다.
Posted by WYW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