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마감 시간이 지났으니 글을 올려도 되겠다. 투표소에는 갔다. 그러나 지역구와 비례 모두 기표는 하지 않았다. 투표율을 낮추지는 않았지만 득표율에는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입법 취지를 훼손한 거대 양당의 위성정당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소수 정당들은 한 석이라도 확보해야 한다는 현실론으로 위성정당에 줄을 서면서 진보정치의 민낯을 보여주었다. 정치적 스펙트럼을 넓혀야 할 진보 정당이 스스로의 존재 기반을 무너뜨린 선거는 처음이었다. 최악의 선거였다.

 

또 다른 이유는 망가진 선거제도에 대한 비판은 투표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정당에 투표했는지의 물음보다 왜 기권했는지의 물음에 답할 말이 더 많다. 기권 이유에 대한 답변으로 21대 총선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면 이 또한 정치적 행위가 될 것이다. 선거일 전 주변에서 "그래도 투표해야 한다"는 권유에 이제 이렇게 답하겠다.

 

최선이 없다면 차악이라도 찍어라

 

공약도 그렇고 소속 정당도 그렇고 찍을 후보가 없었다. 대개 이럴 때는 뽑지 말아야 후보/정당을 먼저 제외하고 나머지 선택을 하게 된다. 이렇게빼기 선택을 하면 남은 후보/정당에는 이른바 ‘비판적 지지 하게 된다. 말이 '지지'이지 정확히 말하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후보가 아니라 당선되어서는 안되는 후보/정당을 향해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던진 차악의 후보/정당은 내 표를 자신들을 향한 지지로 인식할 것이다. 거대 양당 체계가 싫어서 00당에게 준 표는 00당을 지지하는 표가 아니다. 그럼에도 00당은 내 한 표를 갖고 자신들의 정치 활동에 대한 민심으로 왜곡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은 대의(representaion)에 왜 표를 주어야 하는가.

 

진보정당에 표를 주어서 영향력을 높여야 한다

 

맞는 말이다. 진보정당에 표를 주어 위성정당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세력에 대항할 힘을 실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20 국회에 의석이 없고, 당선가능성이 낮은 정당이라면대학 전면 의무교육 같은 실현가능성이 낮은 공약이 아니라 선거 이후에 지역에서 어떤 활동을 하겠다는 공약이 있어야 했다. 두세 명의 의원으로는 교섭단체도 구성할 수 없고, 쟁점 법안에 캐스팅 보트의 역할도 하기 어렵다. 지역구 의석보다 비례대표를 더 많이 배출할 진보정당이라면 입법 공약이 아니라 표를 준 시민, 분야, 지역에서 어떤 정치적 조직화를 하겠다는 계획이 더 유효하다. 그래야 선거 이후에도 지역 시민이 진보정당과 함께할 기회에 기대를 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약속을 진보정당은 곳도 없다. 소속 정당을 알리기 위한 출마, 비례대표의 득표를 위한 출마였다면 비용과 노력으로 이루려는 구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른 제도권 정당과의 비교를 위해국회 입성을 전제로 하는 특이한 공약”을 내세울 것이라면 국가혁명배당금당의 공약이 가장 훌륭했다. 진보정당 지역구 후보는 당의 비례대표 한 명이라도 당선 가능성이 있다면정기적인 지역주민 정책 간담회’, ‘000 동대문구 청원게시판 실행 계획을 제시하는 전략도 가능했다. 그럼에도 이번 선거에서 진보정당 시민과 함께 할 생활정치 청사진을 보여준 곳은 곳도 없었다.

 

정당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고 찍어라

 

사회적 소수자들일 수록 자신들의 요구를 듣고 /개정을 실행할 명의 국회의원이 절실하다. 플랫폼 노동자, 장애인, 성소수자의 인권 아니라 언론개혁, 검찰개혁 오래된 과제를 실행하겠다는 비례후보들은 많다. 선거 기간 동안 이들은 개인의 경력, 의지, 그리고 임무를 얘기한다. 그러나 이들은 당선 이후 소속 정당에서 어떤 상임위에 들어갈지, 어떤 당무와 당직을 맡을지 전혀 없다. 선거 때는 개인의 자질을 말하지만, 국회에 들어가면 정당의 일부가 된다. 자신을 지지해 시민과 단체를 만나는 시간보다 의원회관 안에서 의원총회 당내 회의, 당직에 따른 당무 수행에 쏟는 시간이 많다. 훌륭한 경력과 인품만으로 그에게 표를 없다. 특히 재정과 인력이 부족한 진보정당에서는 의원 명이 수행해 당무가 더욱 많다. “정당을 보지 말고 사람을 보라 하지만 사람이 보이는 때는 선거운동 기간 뿐이다.

 

NOTA가 포함된 영국 총선 투표용지

 

기권을 정치적 의사 표현으로 인정하라

 

장문의 변명을 이유는 투표에서 기권이 그저 기권표 한 장으로 계산되지 않 기권했는지 알기를 바라는 의도, 선거제도와 정당체제에 대한 비판을 하기 위함이다. 좋아하지 않는 비유지만, 잘못 출제된 문제의 잘못된 객관식 보기에서 하나만을 택한다면 문제의 오류에 눈을 감는 셈이다. 문제가 잘못되었다거나 정답이 틀렸다는 항의는 종종 있었다. 그러나 시험제도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항의하는 경우는 드물다. 21대 총선이 이 상태다. 위성정당의 적법성만이 이슈가 된 문제에 차이를 구분할 수 없는 보기가 주어진 시험을 인정하라는 강요다. 투표할 수 있는 권리가 투표를 해야 할 의무가 되었다. 

 

투표란 헌법에 명시된 참정권 중 가장 낮은 수준의 정치 활동이다. 특히 시민 스스로 만들지 않은 선택지에 기표를 해야하는 투표라면 더욱 그렇다. 만일 해외 사례처럼 <지지후보 없음>(NOTA: None of the above)이라는 선택지가 있었다면 기권하지 않았을 것이다. NOTA는 여러 방식으로 영국, 인도, 그리스, 미국의 네바다주,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스페인, 콜롬비아, 방글라데시, 불가리아 등에서 이미 시행 중인 선거제도다. '지지후보 없음'이라는 칸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영국처럼 투표 거부를 요청하는 정당이 출마하기도 한다. 

 

NOTA를 시행하는 일부 국가에서는 해당 칸에 기표한 표를 유효표로 인정하기 때문에 NOTA의 득표율이 다른 후보자들보다 높아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최다 득표를 한 후보보다 NOTA의 득표율이 높을 경우, 당선인을 선정하지 않고 공석으로 두거나, 재선거를 치루기도 한다. 재선거를 하든, 차기 선거를 준비하든 각 정당은 이전과 동일한 후보를 공천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기권표가 정당한 정치적 의사로 인정받는 것이다. 2013년 9월 인도 대법원이 NOTA 적용의 판결을 내리며 밝힌 이유는 지금의 한국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판결은 투표 시스템 전체에 걸친 변화를 불러올 것이며, 정당들로 하여금 깨끗한 후보를 내보내도록 강제할 것이다. 민주주의란 어떤 선택을 하느냐의 문제인데 유권자들은 (후보자에 대한 찬성표 뿐만 아니라) 반대표를 던질 권리도 얻게 될 것이다.”

 

시민이 만들지 않은 후보, 정당의 선거 전략으로 정해지는 후보들 속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는 세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지역 풀뿌리 정치가 성장하려면 NOTA와 같이 반대표를 던질 권리와 시민 스스로 후보를 만들 수 있는 조직과 지원이 있어야 한다. 시민 정치활동은 정당이 선거 때만 눈길을 돌리는 지역과 사회 분야에서 지역 개발 정책 반대, 자율적인 문화예술 활동, 지역 노동자와의 일상 모임 등을 통해 힘들지만 꾸준히 이어져 왔다. 내 정치활동의 근거지는 이런 곳이며 총선 이후에도 지역시민과 함께 정당에 명확한 정책과 실행을 요구할 것이다. 무엇보다 선거법, 국회법 정치관계법에 주목할 것이다. 이번 21 총선이 나에게 교훈이 있다면 지역 민주주의의 절박함이다. 바로 그것이 기권표를 통해 알리려는 나의 정치적 의사다.

 


참고문헌: 정혜란, "아무도 지지하지 않을 권리에 대하여 아시나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블로그, 20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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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페리호 참사는 진정 끔찍한 사태이지만, 그렇다고 살인은 아니다.

: 아이들이 포함된 어떤 비극이라도 격한 감정을 일으킬 것이지만, 세월호의 선원들에게 “살인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Mary Dejevsky


비참했던 처음의 반응은 논외로 하면 한국의 페리호 참사 여파는 점점 그 한계까지 감정이 고조되고, 극심해지는 듯하다. 어떻게 그렇지 않겠는가? 476명의 탑승객 중에서 174명만이 구조되었다. 구조되지 못하고 남은 300명이 넘는 이들 중 대부분이 아이들이고, 이들은 서울 근교의 같은 학교 학생들이다. 이들은 배가 기울어지고 전복되었을 때 그 안에 갇혀있었다. 행여나 다수의 생존자들을 찾아낼 가능성은 늘 그렇지만 희박하다.


사고 발생 6일째에 이르러 국가의 수장인 박근혜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여기서 박대통령은 일부 페리호 선원의 행동이 “살인과 다를 바 없다”며 규탄했다. 대통령은 직접적으로 학부모나 한국민 전체가 아니라 정부 관료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잘못이 밝혀진 이들에게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라면 명백한 국가적 비극에 이렇게 늑장 대응을 한 국가의 리더가 지지율은 물론이고 그 직위까지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시기상으로 부족했던 점을 단호한 대응으로 메우려 했다. 번역과 문화적 차이에서 있을 수 있는 복잡함을 고려하더라도 “살인”이라는 말이 눈에 띈다. 한편으로 보면 그런 말은 지금과 같은 재난에 대한 격한 감정을 동반한 것일 수 있다. 10대들이 부모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나이에 비해 훨씬 어른스러운 도덕적 각성을 보여준 문자들이 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흐느끼고, 분노하며 부둣가에 모인 절망에 빠진, 여전히 자식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이 있다. 교감 선생님은 자살을 했고, 유서에는 자신의 책임졌던 수많은 아이들이 죽은 후에 구조되어 살아 갈 수 없다고 남겼다.


분노와 슬픔의 격하게 뒤섞이는 것은 어떤 곳의 재난에서도, 특히 많은 아이들이 유명을 달리한 곳이라면 당연한 일이다. 영국의 경우, Aberfan의 비극을 생각해 보자. 웨일즈의 광산 마을이었던 이곳에서는 산사태로 마을의 학교가 파묻혀 100명이 넘은 아이들이 사망했다. 1966년에 있었던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마음의 상처가 되고 있다. 똑같이 생생한 슬픔이 러시아 남부의 Beslan에도 남아있다. 10여 년 전 여기서는 200명에 가까운 아이들이 체첸 인질범에 손에 죽거나, 서툰 구조작전의 와중에 사망했다. 또 2008년 스촨성 지진에서 죽은 아이들의 부모들을 흐느끼게 한 분노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사고 이후 당시 지방 정부의 부패로 인해 학교 건물이 규정을 위반하여 지어졌음이 알려지자 온갖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에서 나온 분노였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살인”이라는 비난으로 돌아와 보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살해되었는가? Beslan에서 죽은 이들은 고의든 그렇지 않든 테러 행위로 인한 결과로 죽임을 당했다. 영국에서 Aberfan의 산사태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주의 때문에 처벌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987년 193명의 목숨을 앗아간 Zeebrugge의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 페리호 침몰 이후 회사의 대표는 최종 책임을 지고 사퇴했지만, 선박의 차량 출입용 램프 도어를 닫지 않은 선원들에게 직접적인 책임을 몰아가는 것에는 조심스러웠다. 사람이 아니라 과정에 대한 책임을 더 물었던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는 이런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비록 지금까지 나온 공개된 녹취록들이 선장과 선임 선원의 대응에 영향을 준 혼란, 무능력과 공포를 알려주고 있지만 말이다. 응징을 원하는 부모와 대중들의 바람을 거부하긴 쉽지 않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책임과 고의에 대한 보편적인 질문은 다시 제기될 지도 모른다. 죽음이 실수나 공포 때문에 벌어진 결과라면, 누군가에게 살인자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이 정당한가? 부분적으로는 그 선을 어디에 그을지는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살인”을 말할 때, 그 선을 어디에 그었는지는 동양에서도 그렇지만,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로 분명하다.


원문 출처: <가디언> 2014년 4월 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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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광고와 정체성의 정치학

: 국가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방황하는 광고

  

김동원(공공미디어연구소 연구팀장)


“음악은 만국의 언어”라는 말이 있다. 음악가의 국적이나 언어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듣는 이들의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언어 그 이상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육체의 언어라 할 수 있는 스포츠의 이미지들 또한 그런 언어이다. 차이가 있다면 스포츠에서는 언어로 표현하기 힘든 역동적인 육체의 움직임이 한 순간에 펼쳐지며, 그 시점이 지나면 말로는 복기가 불가능한 시각적 이미지들이 포함된다. 2005년 5월 새벽에 케이블 채널을 돌리다 눈에 띤 축구 경기가 바로 그랬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 열리던 AC 밀란과 리버풀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이 중계되고 있었다. 전반에만 3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던 리버풀이 후반 11분부터 6분 동안 연속으로 3골을 넣던 장면, 그리고 숨 막히던 승부차기 끝에 우승을 차지하던 그날 밤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리버풀의 역사도 잘 몰랐고, 왜 그 우승이 중요했는지의 배경도 몰랐지만 나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팀의 경기를 그토록 긴장하며 본 기억은 이전에도 별로 없었다.


스포츠가 주는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언어나 문화가 달라도 오직 육체의 이미지 하나로 지구촌 모든 이들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 강력한 순간의 메시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어 그 이상의 언어인 스포츠의 육체적 이미지들은 역설적으로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언어에 취약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한일전 야구경기에서 이승엽의 타구가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다”는 해설자의 말 한 마디는 예기치 못했던 경이의 순간에 두 나라 간의 역사적 갈등을 한 마디로 응축하여 의미를 부여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스포츠의 ‘비정치적인’ 정치성

공정한 심판에 의해 어떤 정치적 편견도 개입되지 말아야 한다는 스포츠는 말과 문자의 이데올로기적 기능에 따라 일순간에, 그것도 너무도 자연스럽게 강력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이미지들을 만들어 낸다. 바로 이런 “비정치적인 정치성” 때문에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항전은 고도의 정치적 담론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손기정 선수의 마라톤 금메달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국가=민족=대표 선수’라는 신화의 원형(archetype)이 되어 왔다. 물론 해방 이후 모든 국제 경기는 선수 개인이 아니라 국가와 국가의 승부로 여겨지던 냉전 시대의 또 다른 전쟁터였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1984년 LA 올림픽은 동서 양 진영이 각각 보이콧했던 지극히 ‘정치적’ 대회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선수 개인과 국가의 동일시(identification)는 당연한 것이었고, 금메달은 개인의 성취가 아니라 국가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수단이었다.


그러나 국가만이 유일한 정치적 주체는 아니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 육상 200m 시상식에서 1위와 3위를 한 미국의 두 흑인 선수가 성조기를 바라보지 않고 검은 장갑을 낀 손을 치켜 올린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1960년대 미국에서 벌어지던 흑인인권운동의 연장이었던 이 사건은 올림픽 직전 흑인 선수들의 보이콧을 선언했다가 취소한 “인권을 위한 올림픽 위원회(OCHR)”가 그 배경에 있었다. 국가는 흑인 선수를 단지 자국의 영광을 위한 수단만으로 삼았고, 흑인들 역시 백인들로부터 미국인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를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이에 대한 저항의 의미로 들어 올린 두 개의 검은 장갑은 올림픽이 단지 국가만이 아니라 인종과 같은 정체성 정치 또한 벌어질 수 있는 장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어떤 “대한민국”인가?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국가 대항의 스포츠 이벤트는 높은 시청률과 몰입도로 광고를 비롯한 마케팅의 호기로 여겨진다. 하지만 높은 시청률과 몰입도는 단순한 영상 이미지가 아닌 국가, 인종, 민족, 지역과 같은 다양한 정치적 정체성에서 비롯되며 다시 그것을 강화하는 기능을 한다. 광고의 메시지는 이런 정체성들과 어떻게 접합하는가에 따라 천박한 상술이라는 질타를 받을 수도, 아니면 자연스러운 브랜드 가치 상승이라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런 예측불가능성을 잘 보여준 사례가 이번 동계 올림픽을 겨냥했던 E1의 김연아 TV광고였다. 물론 주목받는 스포츠 스타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들은 많았다. 예컨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상화 선수를 내세운 기아 자동차의 TV광고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E1의 광고와 기아 자동차의 광고는 전혀 다른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갖고 있었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모델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스포츠 이벤트 기간에는 그 광고 모델이 어떤 대상과 동일시되는지가 중요하다. 앞의 언급처럼 잠재된 국가나 민족 같은 정치적 담론들은 비정치적인 스포츠 선수의 이미지에서 몇 줄의 텍스트만으로도 쉽게 촉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광고가 재현하려는 정체성과 시청자들이 스스로 구성하는 정체성 사이에 충돌이 벌어질 때 발생한다.



기아자동차의 광고는 전형적으로 이상화 선수의 성실한 노력과 발군의 기량을 기아자동차의 “놀라움”과 연결 짓는 평범한 동일시 전략을 취했다. “좋은 날이다 / 데이트하기 좋은 날이다 / 쇼핑하기 좋은 날이다 ... 그러나 최고가 되기엔 더 좋은 날이다”라는 텍스트는 그런 성실함을 이상화 선수 스스로의 말처럼 재현해 내고, 이를 자연스럽게 기아자동차의 이미지로 이어 간다. 그러나 E1 광고는 김연아 선수와 기업 브랜드의 동일시가 아니라 거꾸로 김연아 선수를 대상화(objectification)시키는 전략을 취했다. 이는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 / 너는 4분 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이다 / 너는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이고...”에서 잘 나타난다. 김연아 선수는 대한민국과 동일시가 되었는데, 이때의 대한민국은 지극히 모호한 대한민국이다. “4분 8초 동안 숨죽인 대한민국”은 국민으로, “11번을 뛰어오르는 대한민국”은 김연아 선수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에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라는 마지막 텍스트는 그 모호함을 증폭시킨다.



광고 모델과 동일시 대상의 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광고의 발화자(source)와 수신자(receiver)의 관계 때문이다. 기아자동차의 TV광고에서 발화자는 여성의 목소리로 텍스트가 읽혀지는 탓에 이상화 선수로 여겨지고, 이 메시지를 듣는 수신자는 시청자가 된다. 그러나 E1의 TV광고에서는 “너는 김연아가 아니다”라는 첫 문장으로 인해 발화자는 기업(E1)이, 수신자는 김연아 선수가 된다. 이로써 김연아 선수는 특정한 기업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고 “대한민국”이 되라는 명령을 수행할 대상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수신자의 자리를 내 준 시청자들은 도리어 광고를 평가하는 평론가, 나아가 김연아 선수의 정체성을 강요하는 기업을 질타할 후원자(supporter)의 역할을 맡게 된다. 결국 이 광고는 김연아 선수를 기업의 이미지와 분리시키고, 시청자들에게는 김연아 선수를 어디에 동일시해야 할 지 알 수 없는 모호한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라는 마지막 텍스트는 그런 모호함을 잘 드러낸다. 제작 의도에서는 ‘국민으로서의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상징이 된 김연아’를 응원한다는 뜻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김연아 선수가 수신자이자 대상화되어버린 광고 텍스트에서 대한민국은 ‘국민’이 아니라 김연아 선수에게 정체성을 강요하는 ‘국가’가 되어버리고 발화자인 기업은 국가와 같은 위치에 놓인다.

 

국가를 벗어난 민족 정체성의 “우리”

이번 동계 올림픽은 국가 대항 스포츠 이벤트에서 처음으로 한국의 “국가주의(statism)”와 “민족주의(nationalism)”가 분리되어 나타난 때로 볼 수도 있다.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는 빙상연맹을 비롯한 국가 주도의 체육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몸으로 증명한 사례가 되었다. 비록 그가 한국의 국가대표가 아니었더라도 시청자들은 그를 조국을 버린 반역자로 간주하지는 않는다. 그가 버린 ‘국적’인 대한민국과 여전히 그를 응원하는 대한민국은 전혀 다르다. 국적인 대한민국은 선수 개인의 역량을 이용하며 선수를 자신과 동일시하려는 국가라면, 그를 응원하는 대한민국은 국적(국가)이 달라도 여전히 우리와 같음을 인정하는 민족이다. 제도와 체제로서의 대한민국이 국가라면, 국적을 떠나 같은 언어와 문화, 그리고 같은 경험을 가진 민족은 “우리”가 된다. 그래서 김연아 선수에 대한 심판 채점에 강력한 항의를 제기했던 국내 팬들의 분노도 ‘국가 대 국가’의 수준에서 이해될 수 없다. E1 광고에서 거부당한 대한민국이 김연아 선수에게 한없는 책임을 부여한 국가였다면, 러시아의 ‘편파 판정’에 항의한 대한민국은 누구의 지시로 구성된 ‘국민’이 아닌 역사적 경험에서 스스로 부여한 동일성의 산물, 즉 “우리”라는 민족이기 때문이다.


김연아 선수를 내세운 동계 올림픽 E1 광고는 이런 점에서 단지 부정적 반응을 낳은 TV광고의 한 사례로만 볼 수 없다. 이 광고에 대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글로벌 시대에 변화하는 정체성의 문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글로컬라이제이션(Glocalization)이라는 조어가 그렇듯, 글로벌 시대는 맥도날드와 코카콜라의 전지구적 확장을 뜻하지 않는다. 도리어 산업과 금융의 전지구적 순환이 가속화되며 자본은 균등해 지지만, 그 소비자/시청자들은 국경으로 나눌 수 없는 다양한 정체성을 구성해 나간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족주의의 발흥이다. 달리 말하면 민족보다는 특정한 집단이 스스로 상상하는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인 “우리”가 더 적합한 개념일 것이다. 앞으로 두 차례의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더 남았다. 6월에 열릴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은 러시아(!)와 조별 예선 1차전을 치른다. 월드컵이 끝나고 9월에는 다시 한․중․일이 격돌하는 아시안게임이 예정되어 있다. 두 기간 동안 모두 외쳐질 “대한민국”은 어떤 대한민국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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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논리학까지 따지지는 않더라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전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주어와 술어의 전도이다. 언젠가 마르크스는 부르주아 경제학의 물신성을 언급하며 이들은 “자본은 어떻게 생산하는가”를 물을 뿐, “자본이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묻지 않았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생산양식의 역사에서 자본이란 노동이라는 인간의 활동이 어떠한 관계를 취하는가에 따라 만들어지는 대상(object)이다. 그럼에도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이 대상이 어떻게 노동을 만들어 내는가라는 전도된 물음으로 시작한다. 이런 문제틀은 ‘정통 마르스크주의’를 자처하는 진보 진영에서도 마찬가지로 공유하고 있기에, 이들 역시 “자본이 어떻게 노동을 착취하는가”를 얼마나 정교하고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다. 회사가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상식 역시 바로 이렇게 전도된 문제틀의 반영이며 이로부터 이른바 노동조합 ‘경제투쟁’의 한계가 노정된다. 

요 며칠 간의 미디어렙 파동과 시민사회 단체들 간의 대립을 단지 미디어 운동판의 문제로만 국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코바코(KOBACO)의 방송광고판매 독점이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 이후 그 판매를 대행할 미디어렙의 체제를 어떻게 구성할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이 판결이 내려진 시점은 2008년 11월로 종합편성채널의 광고영업방식은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도 않던 시기였다. 오히려 이 판결로 우려되는 지점은 미디어렙사들의 난립과 지상파 방송사들의 직접영업으로 인한 언론의 전면적인 자본화였다. 개인적인 기억을 더듬어보니 2010년 말에 썼던 한 내부 보고서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미디어렙 관련 논의의 핵심은 ‘1공영 1민영’, ‘1사 1렙’ 등을 결정짓는 경쟁유형 확정과 MBC의 미디어렙 위상,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방송광고 판매를 미디어렙에 위탁할지 여부를 정하는 업무영역 등으로 볼 수 있다. 특히 MBC의 미디어렙 위상은 종합편성채널 사업자의 미디어렙 위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야는 6월 국회에서 미디어렙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함께하고 있으나 소유구조는 공영이면서도 재원은 광고를 통해 조달하는 MBC의 광고를 공영과 민영 미디어렙, 어느 쪽에 둬야 할지에 대해 여야 모두 당내 의견마저도 엇갈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MBC가 1사 1렙으로 갈 경우, 2010년 3월 제정된 방송통신기본법 제5조에 의해 동일 서비스엔 동일 규제를 적용해야 하는 ‘수평적 규제’ 체계의 원칙을 받아 종편채널사업자에게도 광고 직접영업을 제한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함의를 갖는다. 현재 MBC는 ‘1사 1렙’을 주장하고 있으며, 시민사회단체는 MBC가 공영미디어렙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있다. 언론노조는 이에 대한 언급이 빠진 미디어렙 단일안을 내놓으며 논의에서 후퇴한 가운데 민주당은 국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6월 중 당론을 채택할 예정이다.”(2011.12. 공공미디어연구소 내부 보고서) 

미디어렙 논의의 핵심은 지상파의 광고 직접영업을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그리고 지역방송과 같은 취약한 재정을 가진 미디어들에게 최소한의 생존권을 어떻게 보장해 줄 것인가의 문제였다. 여기에 종편의 미디어렙 포함 여부는 지상파 방송사들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종속변수였다. 2010년 12월 종편 사업자가 선정되고 이들에 대한 특혜 목록을 점검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미디어렙의 논의에 종편이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때의 논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종편은 빠르면 9월 중에 개국을 하겠다는 계획을 공표한 상태에서, 이 전에 미디어렙법안을 확정하지 않으면 그 종속변수인 종편이 광고직접영업에 나설 것이며, 이로 인해 자사의 광고 직접영업을 노리고 있는 지상파 방송국들이 일제히 종편을 핑계로 법안의 부재 기간 동안 자사의 미디어렙을 설립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이러한 논의의 순서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조중동 종편 개국을 전후로 내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이들의 영향력을 우려하면서부터였다. 안철수 신드롬을 필두로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 아니 욕망이 더욱 커질수록 자본보다 정치권력이, 더 나은 진보보다 “닥치고 반MB” 전선형성에 몰두하게 된 야권과 진보진영의 담론이 그러하다. 미디어렙 법안 역시 광고 직접영업을 통한 지상파의 자본화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내년 선거 국면에서 어떻게 매체들을 견제할 지에 대한 문제틀로 전환되었다. 이런 문제틀은 곧바로 미디어렙 논의의 한 부분이자 그 대상이었던 종편의 미디어렙 포함 여부를 전면에 내세우는 전도로 이어졌다. 요컨대 “미디어의 자본화를 막기 위한 미디어렙”에서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으로 초점이 달라진 것이다. 이런 전도는 결코 낯설지가 않다. MB 정권의 출범은 곧 과거 노무현 정권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시작이었으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기 위해 더 나은 진보보다 일단 MB를 몰아내는 것이 우선 과제라는, 갱신된 그러나 오래된 비판적 지지의 재판에 불과하다. 마찬가지로 미디어렙 문제에서도 미디어 시장 전체의 자본화에 대한 저항보다 일단 “조중동 말살”이라는 당면과제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등장했다.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을 주장하는 이들은 종편을 막을 수만 있다면 미디어렙 법안의 부재로 도래할 지상파(특히 MBC)의 직접영업과 자본화를 허용할 수 있다는, 그리하여 향후 반MB 전선에 유리한 미디어 진영을 구축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지금 벌어진 미디어렙 논란을 단지 언론노조와 시민사회 내부의 의견대립, 혹은 밥그릇 싸움만으로 볼 수는 없다. 설령 미디어 운동이라는 옛날식의 ‘부문 운동’이라 해도 상관없다. 부문 운동이라는 구체적 현실에서 점철되는 위험한 논리들은 다시 정권교체와 같은 보다 추상적 수준의 운동에서도 동일하게 재생산된다. 언론, 예술, 문화, 교육 등의 얼핏 분리된 것처럼 보이는 운동판에서 그러한 논리가 관철될수록 정치라는 광범위한 담론의 장에서 그것은 너무 쉽게 당연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번 미디어렙 논란에 잠재된 전도된 문제틀은 더 큰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조중동 종편을 막기 위한 미디어렙”이란 논리는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미디어 운동 또한 여기에 복무해야 한다는 전형적인 ‘도구적 언론관’의 재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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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fair trade). 좋은 말이다. 시장에서 거래란 가치대로 이뤄져야지 더 많거나 적은 가치로 교환되면 안된다. 이 좋은 논리대로라면 노동력 상품 역시 마찬가지다. 임노동자나 자본가나 착취건 기여건 어쨌든 공정하게 거래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발생한다. 자본가가 임노동자의 노동할 수 있는 능력을 사면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자본가의 소관이다. 아주 효율적으로 써먹어야 한다. 이러한 사정은 노동자에도 동일하다. 노동력을 팔아 받은 돈으로 내일 또 일할 수 있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을 회복(재생산)해야 한다. 자본가가 ‘절약’과 ‘절제’라는 도덕을 설파할 때 노동자 역시 그의 유일한 재산인 노동력을 아껴 쓰고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한쪽은 어떻게 해서든 주어진 시간 동안 더 많은 가치를 구매한 상품(노동력)으로부터 얻어내려 하며, 다른 쪽은 어떻게 해서든 오랫동안 일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 동안 적정량만큼의 노동을 수행하려 한다.
 
자본과 노동의 교환은 단순한 상품의 교환이 아니다. 목적과 의식을 가진 두 존재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충돌하는 이율배반의 장이 바로 교환이다. 만일 노동자가 아니라 로봇이 노동을 수행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보증된 사용기간이 30년인 로봇을 자본가가 과도하게 사용하여 10년 만에 폐기처분해도 로봇은 한 마디 요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는 다르다. 그는 30년의 시간을 일할 권리, 다시 말해 30년 동안 자신의 노동력을 매일 같이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상적인 길이의 노동일을 요구한다. 더욱이 나는 당신의 동정에 호소함이 없이 그것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상거래에서는 인정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범적인 시민일지도 모르며, 동물학대 방지협회의 회원일지도 모르며, 거기다가 성인(saint)이라는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나와의 관계에서 대표하고 있는 자본은 가슴 속에 심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거기에서 고동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 자신의 심장의 고동일 뿐이다. 나는 표준 노동일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다른 모든 판매자와 마찬가지로 나도 나의 상품의 가치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공정거래. 가치에 따른 교환. 적어도 다른 상품들의 교환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상품을 교환할 때 이 공정거래란 바로 계급투쟁을 의미한다. 자본가와 노동자가 모두 동등하게 상품교환의 법칙에 의해 보증되고 있는 권리를 주장하게 된다. 동등한 권리와 권리가 맞섰을 때는 힘이 문제를 해결한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 생산의 역사에서 노동일의 표준화는 노동일의 한계를 둘러싼 투쟁, 다시 말해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의 투쟁으로 나타난다.

[고쳐 쓰기 Marx, K. 김수행 옮김(2001), 자본론 1권(상), 비봉출판사. 306-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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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논쟁이지만 1990년 즈음, 이른바 영국 신좌파(New Left)들 중 일부는 포스트 포디즘이라는 조절양식의 도래와 함께 새로운 노동계급의 출현을 다음과 같이 예견했다. 베네통과 같이 새로운 유연적 생산/유통 방식은 기존 제조업 노동자들이 아닌 디자인, 기획, 마케팅이라는 신직종의 종사자들을 사회변화의 선도(leading edge)로 만들 것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유통과 소비의 영역에서 기존 노동계급들이 발견하지 못한 사회적 열망(aspiration)을 찾아낼 수 있으며, 그들 또한 그러한 열망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앞장서 만들어 낼 새로운 세상. 신좌파들은 이런 세상을 ‘디자이너 사회주의(designer socialism)’라 불렀다. 이들의 주장은 훗날의 회고에서도 엿보이지만 당시 영국의 골수좌파(hard left)들을 염두에 둔 ‘이론의 정치’이기도 했다.
일례로 이 진영의 대표적 학자였던 맥로비(A. McRobbie)는 골수좌파들(?)의 저널 <Capital & Class>에 실렸던 사이먼 클락(S. Clarke)의 글을 두고 맑스주의자들은 소비자들의 열망을 언급하면서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흥미롭게도 맥로비의 이러한 비판에는 클락이 속했던 이론 진영이 견지하고 있던 열망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었다. 주로 자율주의자들과 열린 맑스주의자들(open marxists)로 이뤄진 이 그룹에서 열망이란 새로운 직종이나 소비 방식에 대한 욕구가 아니라 자신들의 노동이 화폐로, 이윤으로 전환되는 과정에 대한 거부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최저임금 인상이라는 요구는 더 높은 소비수준에 대한 바램을 넘어, 더 나은 삶을 위한 노동자들의 욕구에서 비롯된, 임금이라는 굴레(화폐제약)를 벗어나려는 거부(rejection)이자 부정(negation)인 것이다. 굳이 두 진영의 열망을 단순화시켜 구분하면 신좌파들의 열망이란 ‘새로운’ 임노동 관계를 향하고 있고, 자율주의(혹은 열린 맑스주의)자들의 열망은 임노동관계 ‘그 너머’를 향하고 있는 셈이다.
열망과 다른 개념이긴 하나 ‘열정노동’을 다루고 있는 이 책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는 어떻게 보면 위 두 이론 진영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이 열정을 영어로 번역하면 passion이 되겠으나 책을 읽다보면 “내가 하고 싶은/좋아 하는 일을 끝내 해내려는 개인의 의지” 정도로 생각된다. 저자들이 인터뷰한 청년들의 다양한 직종들- 프로 게이머에서 노조의 상근자까지 -의 목록만을 나열해도 20년 전 신좌파들이 말하는 신직종이자 사회 변화의 선도가 쉽게 떠오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2011년 지금도 여전히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창의산업’이나 ‘창의지성’이니 하는 포스트 담론 부스러기들에 대한 훌륭한 비판서라 해도 무리가 없다. 신좌파들이 꿈꾸었던, 아니 1990년대 한국의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고리타분한 좌파 정치운동에 대안으로 내세웠던 문화운동과 신세대 담론에 대한 그 당사자들의 저널리즘(native journalism)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 책을 덮고 나면 “어느덧 착취의 언어가 된”, 그리고 “제도화”된 이 열정을 어떻게 볼 것인지의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고, 창업을 꿈꾸며, 진실을 알리는 기자가 되겠다는 이들에게 ‘너의 바로 그런 열정은 네 꿈이 아니라 자본의 꿈을 이루게 할 뿐’이라는 냉정한 충고만을 던지고 돌아설 수는 없지 않겠나. 저자들 역시 이 지점에서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와 열정을 구분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열정의 반복이다. 열정의 착취로 인해 생긴 이 순환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열정을 불러와야 한다. 운동이 파편화된 시대에 활동가들은 새롭게 노동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새로운 친구들은 자신들의 삶에 도움을 주는 운동의 역할을 찾지 못했다. 이들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려면 여전히 열정이 필요하며, 사라져 가는 열정이 되살아나야 한다. 우리는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를 비판한다. 하지만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시대의 요구는 따르려 한다. 여기에 우리의 모순이, 혹은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존재할 것이다.”

달리 말해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란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임노동 관계이며 “시대의 요구”로서의 열정은 임노동에 종속되지 않은, 혹은 종속되기 전의 ‘하고 싶음’ 정도가 될 듯하다. 지극히 타당한 지적이지만 후자의 열정에는 조금 더 정교화가 필요하다. <내 이름은 김삼순>과 <커피 프린스 1호점>을 보고 파티시에나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는 이들이 열정 노동의 참담함을 느끼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바로 그 순간에 느끼는 갈등을 다이너스타인(Ana C. Dinerstein)은 “내가 지금 누구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what I am and need)”와 “내가 지금 누구이며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가 과연 자본주의적 발전에 유용한 것인가(where what I am and need is useful for capitalist development)” 사이의 긴장으로 묘사한다. 이 긴장 속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고야 말겠다는 의지로서의 열정은 어떻게 해서든 취업을 해야 한다는, 즉 노동력 상품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절박한 욕구로 변하고 만다.
결국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와 다른 “새로운 열정”, “시대의 요구로서의 열정”은 열정 그 자체가 아니라 임노동 관계에 대한 거부, 즉 열정 노동을 만드는 구조에 대한 거부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해서 이 책에서 잠시 대안으로 언급하고 있는- 그러나 그 실현 가능성에는 회의적인 -기본 소득제 등은 열정을 이루기 위한 기본적인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물론 고용의 안정성과 최저 임금의 인상 등 열정 노동 각각의 분야가 아닌 각 부문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사회적 임금 구조가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이 조차도 한국의 상황에선 높은 기대수준에 해당하겠지만, 만일 그러한 고용안정과 임금구조가 정착된다면 열정의 임노동화를 축복하며 샴페인을 터트릴 것인가. 적어도 현재의 상황에서 열정 노동(자)들은 그 다양한 꿈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잔혹한 임노동 관계라는 공통의 지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열정을 부추기는 미디어의 판타지들은 역설적으로 현실에선 노동착취가 제조업의 노동자들 뿐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서도 예외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출발점이 되어 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양상이 과거 오래된 운동권들의 말처럼 “사태가 나빠질수록, 상황은 좋아진다(The worse things are, the better things are)”는 뜻은 아니다. 열정과 노동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공통의 지점들이 만들어 질 수 있으며, 바로 거기에서 무엇을 거부해야 할지, 그리고 그 열정의 순수함을 어떻게 지속시킬 수 있을지의 고민들이 생겨날 것이다.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의 결론은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나 역시 이 서평 아닌 서평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은 피할 수 없다. “문제는 희망을 꿈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E. Blo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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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며칠 전부터 동대문구 일대엔 묘한 플랜카드가 곳곳에 걸려있다. “부자급식 중단하고, 저소득층 급식 지원 확대하자.” 아침 출근길 건널목에 서 있는데 옆의 아주머니들 하시는 말씀. “그니까... 왜 돈 있는 얘들한테도 공짜로 밥을 준다는거야?” “그럴 돈 모으면 없는 애들 급식비 더 싸지잖아.”한동안 여러 일들로 잠시 잊고 있던 ‘보편 급식’이란 이슈가 이젠 언론에서도 사라지고, 트위터에서도 찾기 힘들건만 이렇게 동네 구석구석에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것저것 다 관두고 내 관점에서 정리하면 이런 얘기다. 저 플랜카드의 호소력이란 “모두가 똑같이 낸다고 생각하는 세금으로 돈 많은 얘들 밥까지 챙겨줄 필요가 없다”는 의미로 읽히면서 그 힘을 발휘한다. 도대체 저소득층의 기준이 어디까지이고, 그런 기준을 어떻게 만들며 그 기준을 받아들이는 아이들의 마음이 어떨지는 너무 많은 얘기들이 나왔으니 또 다시 반복할 필요는 없겠다. 단지 모두가 알 만한 사실 몇 가지가 확실하다. 급식예산을 편성할 서울시 예산은 서울시민 모두가 똑같이 낸 세금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이면에는 부자/저소득층이라는 고리타분한 분열 전략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2.
1970년 초 뉴욕. 좋건 싫건 지난 20여 년 동안 미국의 복지체제는 두 바퀴로 굴러갔다. 한 축은 공무원들까지 포함하는 조직화된 노동자들의 투쟁이 얻어낸 복지 시스템과 또 한축은 급격한 도시화로 불거져 나온 이민자, 소수인종, 빈민들의 ‘사회질서교란행위’로부터 당시로선 새로운 유형의 사회운동들의 요구들을 틀어막기 위해 지급했던 복지 시스템이 그것이다. 전자는 연방정부의 몫이었고, 후자는 지방정부(주)의 몫이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로 격발된 공황의 파고는 뉴욕시로 하여금 자신이 감당해 할 복지비용을 빚(채권)을 내며 충당했다. 문제는 1975년 2월 뉴욕시가 추가로 발행하려던 채권을 은행가협회에서 더 이상 못사주겠다며 버티면서 시작됐다. 다급해진 뉴욕시는 대부분의 자본가들까지 끌어들인 이른바 “비상재정관리위원회”를 만들면서 진화에 나섰다. 어쨌든 시의 돈이 없으니 긴축재정의 이름으로 복지지출과 공공서비스 노동자(병원, 학교, 교통, 청소, 공원 노동자 등)들을 쳐내면서 그 비용을 줄이고, 공공요금은 올려버렸다. 문제는 채권이었다. 뉴욕시가 이 채권을 처리한 방식이야 말로 기가 막혔다. 공무원들 중 감원을 피한 이들의 연기금으로 이 채권을 사버린 것이다. 다시 말해 복지 시스템의 한 축을 이루던 조직 노동자들의 복지급여를 떼어내어 다른 한 축인 ‘없는 놈들’의 복지비용을 충당한다는 말이었다. 그 결과는? “모두가 똑같이 힘들게 버는데 내 돈이 그 빈둥대는 놈들한테 들어가?”란 말이 대세가 돼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노동계급의 분열전략은 실로 성공적이었다. 1980년대 우리가 지금 기억하는 대도시 뉴욕, 그러니까 “I ♥ NY”라는 저 유명한 로고는 이처럼 끔찍한 분열전략의 공세가 성공한 이후 자랑스럽게 거리에서 휘날리게 되었다.

#3.
1970년대의 뉴욕과 2011년의 서울은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적어도 담론의 수준에서만큼은 부르주아 담론의 고유함, 즉 동어반복이라는 속성이 여지없이 드러난다. 40여년 전 뉴욕에서는 “빈둥대는 놈들한테 내 돈을 줄 수 없어”였다면, 2011년 서울에서는 “잘 버는 놈들 밥값까지 내가 왜 내주나?”로 바뀌었을 뿐이다. 욕을 할 사람과 욕을 먹을 사람들이 뒤바뀌긴 했으나, 문제는 복지시스템이 결국 우리 모두의 임금으로 버텨간다는 것, 그리고 그 복지시스템을 둘러싼 소위 정책 논쟁이란 이렇듯 철저히 계급 내 분열을 목표로 한다는 점은 동일하다. 정확히 말하면 이런 담론 전략은 “계급 내 분열”이 아니라 “부자와 저소득층”이라는 또 다른 계급 정체성, 닫힌 정체성의 창출이다. 오래된, 그러나 여전히 강력한 계급투쟁과 담론의 정치. 어디까지가 정치이며 경제이고, 어디까지가 실천이며 담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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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 기자가 있었다. 1936년 취재차 갔던 스페인에서 그는 펜과 수첩 대신 낡은 소총과 허름한 군복을 입고 의용대에 입대한다. 단지 파시즘에 대항하는 전쟁이라는 이유만으로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스페인에 처음 왔을 때, 그리고 그 얼마 동안도, 정치적 상황에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알지도 못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떤 종류의 전쟁인지도 몰랐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내전이 종식될 무렵 그는 모든 자유주의자들과 혁명세력들이 막아내려 했던 프랑코의 파시즘보다 더 무서운 적이 바로 곁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전선의 참호에서 함께 싸웠던 동지들이,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을 프랑코의 사주를 받아 전쟁을 패배로 이끈 “트로츠키주의자”로 몰아 즉결 처형에 부쳤던 것이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하여 영국으로 탈출한 그는 공산당 계열의 거의 모든 신문들이 스페인에서보다 더 무서운 숙청의 펜을 휘두르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울분과 억울함에서, 아니 그보다는 자신이 처음으로 맡았던, 짧지만 강렬했던 바르셀로나 혁명의 내음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한 편의 르포를 써내려갔다. 그 르포의 제목은 <까딸루니아 찬가 Homage to Catalonia>, 그 기자는 바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었다.

오웰은 이 전쟁 이후 “내가 어디에 서 있는가를 알게 되었다”고 회고하며 그 이후에 쓰여진 모든 글의 한 줄 한 줄이 "정치적"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기자로서 그에게 전쟁은 취재해야 할 사실들(fact)의 연속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그에게 전쟁은 끊임없는 반성과 번민, 그리고 분노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 고통스러운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 고통을 거쳐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목적이란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성취하고자 하는 사회가 어떤 사회여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이다. 다시 말하지만, 어떤 책도 진정한 의미에서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이다.”

 

“국가라는 어처구니 없는 그 무엇에 목숨을 걸어야 하나?”

한 병사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그는 친구들과 ‘객기’로 육군 항공대에 입대해 폭격수로 코르시카에 배치된다.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폭격하던 그는 “무슨 즐거운 놀이라도 하는 기분”으로, “헐리우드 영화에서 만들어 내는 영웅적인 무용담에 어찌나 철저히 세뇌가 되었는지” 37회의 출격 동안 죽음에 대한 어떤 두려움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전우들의 비행기가 격추되고 그가 탄 B-25 폭격기가 고사포에 맞아 포탑의 사격수가 부상을 당하자 이 전쟁에서 도망칠 생각만을 하게 된다. 60회의 출격을 끝으로 제대한 그는 약 10년 후 당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편의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소설이 바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고의 반전 소설 중 하나로 꼽힌 <캐치-22 Catch-22>, 그 병사의 이름은 조지프 헬러(Joseph Heller)였다.

“캐치-22”는 명문화된 적은 없으나, 모두가 알고 있는 조항으로 “정신이상자는 제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이 정신이상자임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은 정신이상이 아니므로 제대할 수 없다”는 이율배반적인, 그 자체로 논리적 모순인 일종의 덫(catch)과 같다. ‘객기’로 뛰어들었던 전쟁에서 헬러는 전쟁이란 자신이 살기 위해 자신 이외의 모든 이들을 죽여야 하는, 그래서 개인의 목숨을 담보로 국가라는 관료주의가 벌이는 자기모순적인 범죄임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조국에 대해서도 소설 속 노인의 입을 통해 “국가라는 어처구니없는 그 무엇”이라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내고 만다. 이 비판의 매서움에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는 특유의 풍자를 더해 이 소설은 60년대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미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헬러 열풍(Heller cult)”을 불러일으켰다. 한 병사에게 전쟁은 조국을 위해 희생을 기꺼이 감수해야 할 애국의 장인지는 몰라도, 인간 헬러에게 전쟁은 “모든 인간의 광증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자신의 정상적 의식과 체제의 비정상적 논리 사이”에서 외롭게 투쟁해야 할 모순의 공간이었다.

 

전쟁기사와 전쟁소설은 다르다?

기사와 소설은 다르다고 한다. 기사는 팩트를 다루며, 소설은 픽션을 다루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이런 이분법을 넘어서면 기사나 소설이나 모두 사실 이상의 ‘의미’를 전달하는 이야기(story)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똑같은 연평도 포격 관련 팩트들을 보도하더라도 호전적 기사와 그렇지 않은 기사는 사실의 선택 문제가 아닌 기사가 주는 의미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연평도 포격 사태 이후 근 한 달간 우리는 지상파 방송의 메인뉴스들에서 무슨, 아니 어떤 이야기들을 들었던가? 포공격을 받은 면사무소 CCTV에 폭발음을 입히거나 포탄 연기에 CG작업을 더한 ‘극사실주의(?)’가 등장했고, 그래픽 화면을 통해 3D 보도를 연습하기도 했으며, 이스라엘과 같은 다른 국가들의 대응을 소개하는 ‘해외사례’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당연히 뉴스보도에서 오웰의 ‘정치성’이나 헬러의 ‘모순어법’을 드러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교전 상황에서 사실 이상의 의미를 말하는 이야기로 뉴스를 본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팩트의 선택을 넘어선 태도, 곧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천안함 때에도 그랬지만 이번 연평도 교전 이후의 보도들에서도 확전 가능성만을 이야기 했지 전쟁이 아닌 다른 선택은 없는지, 교전 직후 “해병대 입대 자원자가 늘었다”는 군의 발표를 반복할 뿐 전방에 자식을 보낸 부모들의 심정이 어떠한지를 다룬 기사들은 얼마나 있었던가. 교전 이후 근 한 달 간의 보도는 그야말로 3류 소설에 지나지 않았다.

 

오웰에게 스페인 내전은 확인할 길 없는 루머와 사실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장이면서도, 뚜렷한 ‘정치성’을 가지고 임해야 할 또 다른 전장이었다. 이 ‘정치성’을 언론이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객관성에 위배되는 당파성이라 해도 좋다. 그러나 오웰에게 정치성이란 그의 말처럼 지금 여기에서 누구의 편을 드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성취해야 할 사회가 어떠한 사회인가”라는 미래의 문제였다. 오늘 우리에게 연평도 교전 이후, 아니 이명박 정권 이후 이 분단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며 지금을 보도하는 언론이 있었던가? 헬러에게 전쟁이란 국가라는 미쳐버린 체계의 비정상성과 국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개인이 자신을 보존하려는 정상성 사이의 분열에 다름 아니었다. 극도의 확전 위험을 가져올 “연평도 훈련 강행에 국민적 신뢰와 성원”을 보내자는 언론은 과연 정상인가? “인내가 아닌 강한 대응만이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냉전시대의 모순적 수사(rhetoric)를 재탕하는 그 비정상성을 어떤 언론이 폭로하고 있는가?

 

국익과 알권리의 사이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토론회ⓒ 미디어스 송선영


얼마 전,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전시-비상상황에서의 취재보도 준칙”이라는 주제의 토론회가 열렸다고 한다. 충분히 예상했던 제안들이 나왔다. 안보와 관련된 “국익”과 민주주의의 기반인 “국민의 알권리” 사이의 충돌이 전쟁이나 비상상황 시에 더욱 민감해 진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구체적인 준칙을 얼마나 세밀하게 만드는가의 문제 이전에, 이미 이런 논의 자체에는 보다 큰 이익을 추구하는 “국가”와 알권리를 가진 “국민” 사이에 냉정한 중립자로서의 기자라는 지독한 직업의식(professionalism)의 이데올로기가 도사리고 있다. 정확히 물어보자. 기자가 존중해야 할 국익이란 향후 국정 주도권을 노리는 특정 세력의 이익이 아니었나? 국민의 알권리란 내가 알고 싶은 정보에의 접근권이 아니라 기자들의 취재권이 아니었나? 특히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언론은 어떤 때는 국익의 이름으로 ‘국민’들에게 훈계를, 다른 때는 ‘국민’의 이름으로 국가에 비판을 날린다. 결국 국익과 알권리의 충돌이란 언론이 자신의 입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혼동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정말로 언론이 전쟁과 같은 극한의 상황에서 올바른 ‘이야기꾼’이 되고자 한다면, 고통 속에서 자신의 정치성을 발견한 오웰의 반성과 매카시즘의 광풍에서도 국가에 대한 회의를 멈추지 않았던 헬러의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전쟁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없는, 그저 전쟁을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가라는 답만을 제공해 주는 “보도준칙”은 그래서 허무하다. 적어도 그런 준칙이 여전히 국익과 알권리 사이의 기만적인 줄타기를 위한 면죄부가 될 때는 말이다.

미디어스 2010년 12월 25일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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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차나 연차를 붙였다면 일주일은 족히 쉬었을 추석 연휴가 U-17 여자 월드컵 우승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사실 어지간한 골수 “축빠”가 아니면 지난 번 4강에 오른 20세 이하 여자축구나 이번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리 만무하다. 박지성이나 이청용, 그리고 남자 국가대표팀에 쏟아지는 관심에 비하면 이들이야말로 “인기종목 내 비인기 부문”이라고 해야 하나? 17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될 수 있는 선수자원은 고교등록 선수 345명뿐이었고, 국내 여자축구팀은 초등학교에서 실업팀까지 합쳐도 65개에 그친다고 한다. 남자 축구나 야구처럼 오랜 기대의 역사를 가진 종목들보다 여자축구와 같이 혹시나 하는 기대의 승전보가 날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기사들이 있다. 지난 시간 무관심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척박한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 종목의 불모지에서 건진 값진 승전보”가 포털 뉴스에 넘쳐난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다. 각 팀 스타 선수들의 불우한 유년환경이나 혹독한 훈련 스토리가 이어서 나와줘야 한다. 이렇게 해서 누구나 다 알면서도 또 어느 한켠 뭉클할 수 밖에 없는, “꿈을 향한 의지” 만으로 잘 버텨준 우리의 태극전사들(소녀들!)이 탄생한다. 지난 8월 20세 이하 여자축구팀의 지소연이 그랬고, 이번엔 여민지와 그 동료들이 그 주인공으로 발탁될 예정이다.

추석연휴가 길긴 길었나보다. 갑작스런 폭우 피해와 여자축구 대표팀의 승전보에 희비가 오락가락하다보니 연휴 전 포털 뉴스들을 도배했던 “신정환 도박 파문”을 잠시 잊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신정환의 도박행보와 거짓말에 대한 집중포화는 이미 내각 청문회와 외교부 특채 파문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김태호와 신정환을 두루뭉수리한 ‘공인’이라는 동일체급에 놓을 생각은 없다. 단지 일국의 국무총리 후보에서 연예인에 이르기까지 전가의 보도로 적용된 원칙이 “도덕성”이었다는 점만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공정한 사회”라는, 어찌보면 자뻑에 가까운 이명박 정권의 국정기조로까지 이어진 이 “도덕성”의 효과는 공인들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도덕성에 대한 인정은 집권 후반기 정권 재창출을 노리고 엄선했던 충신들마저 쳐내게 했다. 이 과감한 “결단” 뒤에 공인만이 아닌 모든 ‘국민’들에게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할 도덕성의 경고가 숨겨져 있다면 지나친 추측일까? 신정환의 도박 행보와 거짓말은 분명 비난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사조차 김태호에게도 하지 않던 ‘연예 탐사 저널리즘’을 행하고, 스토리까지 엉망으로 만드는 예능프로그램의 ‘급편집’이란 강수를 두는 건 분명히 오버다.

여민지의 “의지”나 신정환의 “도덕성 결여”에 딴지를 걸자는 얘기가 아니다. 의지와 도덕은 그 자체만으로는 마땅히 지켜야할 규범이자 덕목이다. 그러나 문제는 의지에 대한 찬양과 도덕에 대한 강박이 분출되는 특수한 국면에 있다. 1997년 말 공황을 기점으로 한국의 거의 모든 공동체 운동과 조직들이 붕괴되던 시기, 해고와 퇴직의 광풍 속에서 우리가 배운 것은 “스스로 버텨내야 한다”는 의지의 습득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 개인적 학습의 과정은 박세리와 박찬호, 그리고 2002년 월드컵 ‘전사’들의 기적으로부터 충분한 정당성을 확보했다. 그리하여 2000년대 중반 이후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보다 혼자서 버티기에 익숙한 20대들이 등장했다.(혹자들은 이들의 개인주의를 두고 “20대 절망론”을 펴기도 했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고난의 극복, 곧 “의지의 강자”라는 이미지는 2000년대 중반 한국사회에서 본격화된 보수화의 바람과 그 맥을 같이 했다. 그 보수화의 중심에서 바로 개인의 의지를 온 국가에 육화시켰던 박정희가 부활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도덕(moral)”은 또 어떠했던가? 97년 공황에서 가장 많이 듣던 말 중 하나가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였다. 경제의 3주체인 정부, 기업, 가계 모두에 공히 적용되던 이 용어는 2000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어느새 “갚을 능력도 없으면서 일단 쓰고 보는 무책임한 개인”(신용불량자)으로 점점 확산되어 갔다. 개인의 무책임으로 협소해진 이 용어가 이번 내각 청문회와 외교부 공채 파문에서 다시 등장한 것 역시 우연이 아니다.

17세 이하 여자축구 대표팀의 우승은 당연히 기뻐할 일이다. 문제는 그 소녀들의 “꿈을 향한 의지”가 모든 국민들에게 암묵적으로 강요될 때 벌어진다. 324명의 여자 고교등록 선수들 모두가 그러한 의지를 불태우지 못한다고 탓할 수는 없으며, 무수한 자기 소개서를 쓰면서도 취직이 안되는 청년들을 소녀들보다 못한 의지박약아로 몰수는 없다. 김태호에서 신정환으로 이어지는 도덕적 책망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신정환의 도박 중독과 직장인의 로또 중독(?)은 같은 수준이 아니며, 박연차를 몰랐다고 한 김태호의 거짓말과 갚을 돈이 없다며 버티기에 들어가는 신용불량자의 거짓말은 동급이 아니다. 의지와 도덕은 사회경제적 상황을 떠난 진공상태의 개인을 대상으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권이 위기에 닥쳤을 때, 혹은 한 사회의 거대한 구조조정이 시도될 때, 이 의지와 도덕이라는 담론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다. 1980년대에 ‘영국병’을 고치겠다던 철의 여인 대처의 구호는 바로 자유로운 시장과 도덕적인 사회였다. 지당한 말이었다. 그러나 시장의 자유란 사실 금융의 자유였음을, 그리고 도덕적 사회란 긴축재정으로 복지시스템을 뒤흔들며 그 수혜자들을 ‘등쳐먹는 자들(scroungers)’이라 몰아간 훈육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이를 신자유주의라 부르기 시작했다. 대처의 1980년대와 이명박의 2010년대는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여민지의 의지와 신정환의 부도덕이 집권 후반기 이명박 정권의 정치적 담론에 포섭되리라는 걱정은 지울 수가 없다. 정치적 담론 투쟁에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지배세력들의 거짓말이 아니라 의지와 도덕 같이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당연한 말”이기 때문이다.

[2010.09.28미디어스기고문]

Posted by WYWH
2010. 8. 3. 00:47
Maradona, by E. Kusturica. 2008.




"경기장에 계신 우리 디에고, 왼손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기적이 임하옵시며 골이 땅에서 이룬 것 같이 하늘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우리에게 일용할 기쁨을 주옵시고, 저 기자들을 사하여 준 것 같이 나폴리 마피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주앙 아벨란제 앞에서 구하옵소서, 디에고." <디에고 기도문>



"난 배우요. 왜냐하면 난 살고 싶은 삶을 살기 때문이오. 배우들은 주어진 대사를 읽잖소. 나는 읽지 않고 살아버리지. 그게 내 무대요. 인생의 연기."  Diego Armando Maradona

 

"마라도나교"라는 것이 있단다. 제단과 십자가, 신부는 물론 경전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한 결혼식은 그들이 마라도나를 진정한 축구의 신으로 영원히 섬기며 공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서약으로 끝난다. 그들에게 정말 마라도나는 신일까? 마라도나는 자신이 신인듯 연기를 하고, 그 연기에 경탄한 사람들 역시 기꺼이 신도라는 또 다른 배우의 역을 기꺼이 맡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 쿠스트리차는 이미 완벽한 배우들을 앞에 두고 영화를 찍은 것은 아닐까?
무슨 의문의 눈길을 던지더라도 이 연기자들은 라틴 아메리카와 이탈리아 남부를 아우를 만큼 거대한 숫자이고, 때론 축구장에서, 때론 거리의 화염병과 최루탄 속에서 그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만큼 치열한 배역에의 몰입을 감수한다. 도저히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지만, 이들의 연기가 그토록 치열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연기자 모두가 그 결말을 알 수 없기 때문이 아닐런지.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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