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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odore Von Holst
Frontispiece to Mary Shelley, Frankenstein published by Colburn and Bentley, London 1831
 

1.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이 아니다.

  메리 셜리(M. Shelly)는 자신이 쓴 작품과 그 주인공의 유명세로 그녀의 존재가 잊혀져 온 불행한 작가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가 뿐 아니라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존재 역시 같은 운명에 처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지나치기 쉬운 사실 하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monster)을 만든 박사(Vitor Frankenstein)의 이름이지 괴물의 이름이 아니다. 셜리의 원작에서 괴물은 피조물(creature), 악마(devil) 등으로 불릴 뿐이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언제부터인가 그 괴물은 자신을 만들어 낸 창조자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당신의 원수의 이름으로 불린다고 생각해 보라. 프랑켄슈타인의 저주는 원작 텍스트에 쓰여진 것보다 대중문화의 역사가 만들어낸 이런 전도(inverstion) 속에서 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텍스트 외부에서 벌어진 이런 전도는 이미 그 안에서 준비되고 있었다. 박사는 자신의 괴물이 생명을 얻던 바로 그 순간, 공포에 휩싸여 실험실을 박차고 나온다. 자신의 놀라운 지적 산물을 공포의 대상으로 마주하는 모습은 주체의 활동과 그 결과가 분리되고, 서로가 적대적 관계에 놓이는 '소외'에 다름 아니다. 인간의 노동이 그 산물인 상품과 대립하고 상품에 지배당하는 소외는 전도된 표상(Vorstellung)으로 나타난다. 한 명의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이 '삼성'이라는 기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기업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노동을 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래서 그는 한 명의 노동자가 아니라 '삼성의 노동자'이다. 나아가 그의 노동은 노동을 행한 그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아니라 월급과 연봉이라는 표상을 요구한다. 최근 유행하는 "88만원 세대"라는 표상은 바로 이런 전도를 가리킨다. 작품이 발표된 1818년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이러한 삶은 갈수록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창조자의 이름이 그 창조물로 전도되고, 나아가 그 문학 텍스트의 저자가 잊혀져 온 과정은 바로 이런 소외와 전도의 역사 속에서이다.

  물론 자신이 만든 대상을 끔찍한 공포의 존재로 마주한다는 이야기는 이 작품 이전에도 흔한 테마였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역설적인 운명을 겪은 텍스트는 흔치 않다. 더욱이 그러한 전도가 작가가 아닌 대중과 대중문화에 의해, 즉 작품의 소비와 전유를 통해 이뤄져 왔다는 사실은 텍스트 그 이상의 문제를 제기한다.

[경고: 이 글을 쓴 저는 문학이 전공도 아니고 평론가는 더욱 아닙니다. 생각나는 대로 내쳐 쓴 글이니 함부로 퍼가시면 곤란합니다. 하다못해 댓글이라고 적으시면 모르겠습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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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6년 영국의 한 카툰>

 

2. 19세기의 프랑켄슈타인: 노동자 대중이라는 괴물


  작품에 나타난 박사와 괴물의 관계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 중 모레티(Franco Moretti)의 해석은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 관계를 19세기 영국의 계급관계, 즉 '자본과 임노동의 관계'로 해석한다. 19세기 영국에서 노동자들(노동자 대중)은 자본가들에게 '괴물(monster)'의 이미지로 다가왔다. 동시대의 엥겔스(F. Engels)가 <영국노동계급의 처지>에서 묘사했듯이 그들은 돼지와 함께 잠을 자고 한 벌의 옷으로 겨울을 나는 처참한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파업을 방해하는 자본가와 어용 노동자들에게 염산 테러까지도 불사하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했다. 셜리의 작품이 발표되고 오래지 않아 영국 보수파들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을 받은 모든 민주적, 진보적 요구의 주체들을 "역겨운 폭도들(revolting mobs)"로 몰아세운다. 이 때 그들에게 사용된 은유(metaphor)가 바로 "영혼 없는 육체, 프랑켄슈타인의 괴물(Frakenstein monster)"이었다.  

  모레티가 지적한 이런 은유가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원작의 또 다른 부르주아적 전유라면, 여기서의 대립은 단지 외면적인 대립, 계급 갈등의 표면적인 투영에 그치고 만다. 도리어 작품 속 박사와 괴물의 적대는 더욱 복잡하다. 괴물을 만든 직후 사라진 박사의 가장 큰 죄악은 사실 자신이 만든 창조물의 존재를 망각하려 했다는 것이다. 2미터 40센티에 달하는 거구에 끔찍한 외모를 가진 그 괴물은 그 탄생의 순간에 그저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였을 뿐이다. 자신의 눈에 맺히는 상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그것을 가리키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복잡한 소리들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전혀 모르는 존재였다. 그런 '괴물'이 이후의 끔찍한 고독과 배신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저주하게 되었을 때 박사에 대한 복수가 시작된다. 괴물은 박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의 창조자인 바로 당신이 나를 끔찍히도 미워하고 멸시했소. 당신의 피조물인 나를 말이오. 당신과 나를 얽어맨 이 속박은 둘 중 하나가 사라져야만 풀릴 것이오."(102)
  이런 분노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두 계급의 적대로 읽어내기에 충분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작품의 결말에서 괴물은 박사의 죽음을 앞에 두고 결국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음을 고백한다. 결국 박사와 괴물의 적대는 하나의 소멸이 다른 하나의 소멸로 이어지는 내적으로 연관된 적대이다. 자본은 임노동을 두려워할지 모르지만, 임노동의 소멸은 자본의 소멸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식의 해석이 작가인 셜리의 의도와 부합할리는 없다. 그러나 자신들이 불러내어 마주한 대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는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말한 부르주아들의 공포, 곧 램프 속 요정을 불러내고 느끼는 두려움. 바로 그것이다.

  과학의 정점에서 불러낸 괴물과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생산력인 임노동은 박사와 부르주아 모두에게 두려움의 존재들이다. 19세기 에드가 알런 포(E. A. Poe)가 소설에서 그려낸 군중에 대한 두려움(군중 속의 남자)은 바로 이런 부르주아적 공포의 또 다른 표현이다. 비록 그녀의 부모가 급진적 사상가들이었다고 해도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셜리 역시 이런 부르주아적 공포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모레티가 프랑켄슈타인을 가리켜 "부르주아 문명화가 낳은 공포(the fear of bourgeois civilization)"라고 말한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은 공포를 느끼는 주체가 박사와 작가임에도 정작 그 공포의 현실적 실체인 노동자들 또한 이런 공포에 동참해 왔다는 사실이다. 대중문화가 부르주아적인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바로 이런 전도의 과정에 있다. 부르주아의 공포에 그 공포의 현실적 대상을 동참케 하는 것. 프랑켄슈타인이 괴물이 되고 20세기에 와선 아예 희화화되어 버린 이 역사적 과정이 20세기 대중문화의 전형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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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대의 프랑켄슈타인: 대중문화


  언젠가 마르크스는 부르주아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프롤레타리아를 가리켜 "아무 것도 아닌 존재, 그러나 모든 것일 수밖에 없는 존재(I'm nothing, but I must be everything)"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그가 독일 혁명의 유일한 주체로 당시 형성 중이었던 프롤레타리아를 지목한 것은 오직 그들만이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부정할 수 있는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자본주의에서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 계급을 형성하는 역사이자, 동시에 노동자라는 계급을 부정하려는 모순된 역사에 다름 아니다.

  흥미롭게도 원작에서 '괴물'은 바로 이런 정체성의 부정을 시도한다. 괴물은 탄생 직후 자신의 흉측한 외모가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여겨지는지 뼈져리게 경험한다. 괴물이 외딴 시골집의 창고에서 혼자 언어를 배우고 글을 익혀 <실락원>, <플루타크 영웅전> 그리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는 광경은 차라리 애처로움마저 느끼게 한다. 그러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꿈꾸던 괴물이 유일한 친구라 여겼던 이들에게 내쫓긴 순간. 그는 자신의 창조자가 속한 족속 전체를 절멸시키리라 다짐하는 '괴물'의 정체성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린다.

  셜리의 프랑켄슈타인 역시 20세기 대중문화 속 수많은 변종과 아종에서 이렇게 갇혀진 정체성만으로 재현되어 왔다. 당연히 이 재현의 핵심은 바로 괴물의 '외모'를 얼마나 끔찍하게 그려내는가에 있었다. 노동자들에게 바로 자신들이 공포스런 존재임을 잊게 하는데 이러한 시각적 재현이야 말로 결정적이었을 것이다. 1930년대 시작된 헐리우드의 프랑켄슈타인 시리즈의 흥행은 바로 이런 전도의 시작이 아닐런지. 이 때 괴물은 비로소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창조자의 이름을 얻고, 자신의 역사적 분신인 노동자 대중들에게 하나의 유희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아니며, 자신들이 19세기에 부르주아들을 떨게 만들었던 바로 그 공포였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원작 속 괴물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보여짐’(시각적 이미지)은 1930년대 이후 영상매체에서 현실이 되었다. 셜리가 기대했던 작품 전체의 구성이 주는 공포는 이제 단순한 몇 컷의 시각적 공포로 대체되었다. 어디선가 아도르노(Th. Adorno)가 '부분에 의한 전체성의 전복'이라고 통탄했던 '문화산업'의 악몽은 이렇게 나타났다.

  1818년 이후 <프랑켄슈타인>이 거쳐온 변형과 전유의 역사는 하나의 부르주아 장르가 노동자 대중들이 즐기는 문화로 이입되는 과정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자신이 만든 괴물에게서 느낀 공포는 이제 작가인 셜리의 몫일지도 모른다. 19세기 초의 한 소녀가 쓴 공포소설은 그 자체로 괴물이 되어 버렸다. 작가의 의도와 상관없이 지난 180여년 동안 <프랑켄슈타인>은 대중문화 속에서 스스로 언어를 익히고 모습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이렇게 자란 프랑켄슈타인은 소설 속 자신을 만든 박사와 소설을 쓴 작가의 존재마저 잊혀지게 만들었다. 자신을 만든 주체를 잊게 하고 그 주체를 지배하는 상품의 속성이 오늘날 대중문화의 성격인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더욱 강력한 대중문화의 힘은 자신이 존재를 가능하게 하는 대중들의 힘을 표상 뒤에 감추고 전도시키는 과정에 있다.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낸 부르주아의 공포가 노동자들의 힘이었다면, 노동자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은 결코 공포의 대상이 아니다. 괴물을 보고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해야 할 이들은 흥행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다. 만일 우리가 '괴물' 프랑켄슈타인이라면, 누가 프랑켄슈타인을 두려워할 것인가.


Mary Shelley(1818/2003),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Hindle, M(2003), "Introduction" in Frankenstein or the modern prometheus, London: Penguin Books.

Moretti, Franco(1983), 'Dialectic of Fear', in Signs Taken for Wonders, London: Verso Editions and NLB.

Marcuse, H(1960), Reason and Revolution: Hegel and the Rise of Social Theory, Boston: Beacon Press.

[2008년 대중문화의 이해 강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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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가 또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당신에게 "나이가 들면 좋은 것은 더 이상 놀랄 일이 없다는 것"이라고 한 말이 기억납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말은 한 살을 더 먹는다는 것이 세상 뿐 아니라 당신에게도 그토록 무감해졌다는 끔찍한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때 당신과 나를 묶어 주었던 수 많은 끈 중에 '좋은 세상'이라는 끈이 있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어릴 적 치기에서 나온 막연한 감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서로가 공유하고 있는 어떤 '세상'이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의 핑계가 돼주길 바랬으니까요. 그렇게 어린 희망은 쉽게 부서지기 마련입니다. 당신도 알았지만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세상에 대해 얼마나 비관적이고 패배적인지로 확인하려는 못된 습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적 희망은 그렇게 '파국'과 '비극'만을 찾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더욱 빨리 사라지는 법이지요. 당신이 내게 느낀 '막막함'이나 당신에게 내가 보인 '무감함'은 이렇게 생겨났을지 모릅니다.

  그런 희망이 사라진 빈자리는 다른 것으로 채워져야 했습니다. 이건 아주 쉬운 일입니다. 희망을 포기하게 한 그 비관과 패배를 조금만 덜어 내면 되니까요. 정말 자신이 세상을 비관할만큼 '잘났다면', 그런 양보는 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희망은 정말로 부질없는 것이 되지만, 가능하고 눈에 보이는 미래는 충분히 바랄 수 있는 꿈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꿈은 절대로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당신도 이제는 알고 있겠지요. 꿈은 처음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지도 않고, 예전 희망이 어리숙했던 것만큼이나 꿈이 버거워지니까요. 아니 어쩌면 꿈이란 말도 쓰지 않을지 모르겠군요.

  한동안 꿈을 꾸었습니다. 충분히 난 그럴 자격이 있다는 오만함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세상에 대한 비관이나 그 이후의 헛된 꿈은 둘 다 나 자신을 열어놓지 못한 탓일지도 모릅니다. 자기를 감싼 껍질만이 온 세상인줄 아는 달팽이처럼 말입니다. 헛된 꿈이 지나간 후, 한 때 우리를 위태롭게 묶어주었던 '희망'이 다시 보입니다. 물론 이제는 그 때처럼 어리숙하고 막연한 희망은 아니지요. 그건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이고, 그렇기에 지금을 더욱 힘있게 살게해 줄 새로운 희망입니다. 얼마 전 블로흐(E. Bloch)가 쓴 <희망의 원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제가 말한 희망을 "유토피아"라고 부르더군요. 그러면서 인류에게 지금까지 살게 해준 그 유토피아라는 '기차'는 자신만의 시간표를 갖는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그 옛날의 '오래된 희망'을 기억하고 있는지요. 언젠가 그 희망이 새롭게 바뀌리라는 기대를 해 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수많은 '나'를, 나는 수많은 '당신'을 만날 수 있겠지요. 새해인사로 쓴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행여 우리가 그렇게 만난다면 오래 전 했던 말을 바꾸려 합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것은 갈수록 놀랄만한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놀랍고 새로운 한 해가 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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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인 킬고어 트라우트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사실 우리는 2001년 2월 13일 오후에, 정확히 10년 전인 1991년 2월 17일로 돌아갔었다. 왜냐고? 트라우트는 이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우주가 갑자기 지겨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었다. 시간을 무한히 확장하며 앞으로만 나아가던 우주는 “왜 자기가 이런 짓을 해야 하는지,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는지”를 아주 잠깐 고민했다는 것이다. 우주는 그저 딸꾹질 한 번 할 정도의 시간만 고민했지만, 그 시간은 인간에게 지난 10년을 다시 반복하게 했다.

  타임퀘이크(timequake)라 불리는 이 10년 동안 사람들은 이미 이전에 자기가 했던 말들과 행동을 티끌만큼도 틀리지 않게 다시 해야만 했다. 타임퀘이크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사람들은 데자뷰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이 데자뷰를 10년 동안 1초도 빼놓지 않고 경험하게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잘못 찍었던 답안지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어도 저절로 그 때와 똑같이 찍었고, 내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한 입사원서는 여전히 또 내고 있었으며, 연인에게 헤어지자고 했던 말도 다시 반복해야 했다.

  문제는 이 반복의 10년이 끝난 두 번째 2001년 2월 13일 오후가 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이제 ‘자유의지’가 돌아왔음을 아무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자동차 핸들은 제멋대로 돌아갔고, 돈을 내주어야 할 은행원은 건네던 손을 멈췄다. 사람들은 벼락처럼 떨어진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갖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아니 그런 것이 있기나 했던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당신들은 이제 자유의지를 갖게 됐어요!”라는 말 따윈 아무 소용이 없었다.

  바로 그 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가 킬고어 트라우트는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굳어 있던 한 경비원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당신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소.”

  이 말은 곧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이제야 비로소 자신들의 운명을 다시 책임질 순간이 왔음을 깨우쳐 주는 외침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그 끔찍했던 타임퀘이크가 있었다는 사실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지구상에 몇 안되는 현명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 말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어느 결혼식에서 이런 주례사를 들었다. “두 사람은 아팠지만 이제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가장 현명했던 킬고어 트라우트를 기리며 올해의 새해인사를 보낸다. “당신은 그동안 많이 아팠지만, 이제 다 나았고, 해야 할 일이 있어요.”

From Kurt Vonnegut, 박웅희 옮김(2006), 『타임 퀘이크』, 아이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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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unication Paradox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설명하는 대다수의 모델들은 커뮤니케이션의 발생 혹은 그 조건을 커뮤니케이션의 결과 혹은 목적에 일치시키고 있다. 특히 피스크가 말하는 과정학파 모델들은 송신자 의도의 충실한 전달이라는 면에서 커뮤니케이션 행위의 발생조건을 그 결과의 완수 속에서 확인하려 한다. Shannon과 Weaver의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이 보여주듯, 송신자가 의도한 메시지는 그 “의도”를 가로막는 노이즈(noise)를 최소화시켜야 하는 임무(목적) 속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또한 Newcomb을 비롯한 대칭, 균형 모델 역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을 균형을 향한 욕구, 달리 말하면 불균형과 비대칭을 극복하려는 욕구로 설명하여 그 균형의 달성을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로 본다. 어느 것이건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모델들은 발생의 조건(기원)에 그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에서 분명한 ‘결정론’이자 ‘목적론’을 이룬다. 메시지에 앞서 의도가 전제되고(과정학파), 의미에 앞서 구조가 전제된다(기호학파).

  그러나 이 모델들을 ‘전도(inversion)’ 시켜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수학적 커뮤니케이션 모델에서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노이즈를 제거하기 위한, 즉 엔트로피(entropy)를 낮추기 위한 정보(information)의 양에 관련된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렇다면 커뮤니케이션을 애초에 발생시키는 것은 메시지를 통한 의도의 전달이 아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의 목적이지 그 발생조건이 아니며, 도리어 발생조건은 “노이즈의 존재” 그 자체에 있다. 마찬가지로 균형, 대칭 모델의 삼각형들은 발생조건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루고자 하는 균형, 곧 목적 그 자체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균형을 향한 욕구, 즉 참을 수 없는 비대칭의 상태가, 비록 잘못된 표현이지만,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발생조건을 말해 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이 모델들이 상정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균형상태는,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발생하지 않는, 있을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셈이 된다. 그렇다면 목적으로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상정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그 자체의 발생조건, 즉 과정학파 모델 ‘자체’의 발생조건은 노이즈, 비대칭, 불균형인 셈이다. 커뮤니케이션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다.

[커뮤니케이션 이론 강의록 일부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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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us Vivendi

양식(mode) 혹은 방식(way)을 뜻하는 라틴어 Modus와 삶(living)을 뜻하는 Vivendi의 합성어로 “삶의 방식” 혹은 “생활양식”을 뜻한다. 그러나 이 용어는 어떻게 해서든 살아가기 위해 서로 경합하는 부분들 사이의 적응(accommodation)이나 타협(compromise)이라는 내포적 의미도 갖는다. 흔히 정치적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 용어가 비공식적이고 일시적인 협정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편이 영역 다툼에서 modus vivendi에 이르렀다고 하면, 서로가 상대의 가치관이나 태도에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삶의 방식을 꾸려나간다는 의미이다. 이런 의미로 이 용어는 John Gray가 사용한 이래 정치철학의 중요원리로 쓰여 지고 있다.

From Wikipedia, the free encyclopedia


  Modus Vivendi: 결국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이건 사람이건 그 무엇과 “타협”을 하는 과정이라는 심오한 의미가 있었다니... (양복 이름을 뭐 이런 식으로 지었나 모르겠다) 나이를 먹어가며 일정부분 양보하고 일정부분 인정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내가 타협을 하는 그 대상은 결코 타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니(나한테 그쪽에서 뭐 하나 주는게 안보인다), 이건 타협이 아니라 “적응”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적응이라고 하면 내 modus vivendi의 상대는 엄청난 고집불통이거나 위대한 그 무엇으로 여겨진다. 사실 이건 매일 일상에서 부딪히고 느끼는 일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crisis), “타협”이라는 modus vivendi의 본색이 드러난다. 사실 그 고집불통의 놈이 상대하고 있던 것은 나 혼자가 아니라 나와 같은 수많은 그대들이었음이 밝혀지는 순간 말이다. ‘노동하는 개인’들에게 자본은 고집불통의 적응대상이지만, 자본에게 ‘노동자 전체’는 타협해야 할 존재들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수많은 소위 3D 제조업들이 자국을 이탈하는 자본파업을 감행하겠는가. 그 이탈로 자본은 또 다른 노동하는 개인들에게 자신을 고집불통의 존재로 위장한다. 정작 자신은 타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계급관계’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계급‘관계’가 아닌 ‘계급’을 확인하려는 이들에게 자본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고집불통의 완고한 힘이다. 계급의 구획선을 나누려는 자들은 스스로 타협이 아닌 적응을 택한다. 물신성(fetishism)이란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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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 이후 지금의 구성주의적 접근이 등장하기까지 매스 커뮤니케이션 효과이론 교과서는 그 최신판으로 침묵의 나선(the spiral of silence), 다원적 무지(the pluralistic ignorance), 제3자 효과(the 3rd person effect)등을 열거했다. 이들은 사회심리학으로부터 여론과 미디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 도입되었다는 공통점을 갖지만, 한편으로 소위 주류 커뮤니케이션 이론이 얼마나 철저히 관념론 적인가를 보여주는 사례도 된다.

  무엇보다 이 이론들은 그 정도가 어떻든, 개개인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타인들”과 “실제의 타인들”이 다르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론들의 차이가 있다면 두 ‘타인들'이 서로 어떤 점에서 다른가, 그리고 그 다름으로부터 어떤 행동이 도출되는가에 있다. 단순하게 요약하면, 수용자 개인이 관념 속의 타인에게 복종한다거나(침묵의 나선), 실제의 타인들이 설득을 당하는 정도(effect)를 오판하거나(제3자 효과) 아니면 다수의 여론(opinion)을 오판하는 경우(다원적 무지)로 나누어진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이 이론들의 대상은 관념 속에 타인들을 갖고 있는 “개인”(수용자)과 그 개인들 각각의 “집합(set)”이다. 이들은 매스 미디어에 의해 ‘관념 속 타인들’을 만들어 내는 수동적인 존재들이며(다원적 무지, 제3자 효과) 자신들이 만들어 낸 타인들에 종속되는 허위의식의 소유자들(침묵의 나선, 제3자 효과)이다. 이론의 대상이 되는 수용자들이 이런 존재라면, 이론의 주인공인 수용자들이 만드는 “관념 속 타인들” 역시 동일한 존재들이다. 텔레비전의 음란물을 보고 자신은 덤덤하나 다른 이들(관념 속 타인들)은 ‘잠재적인 성범죄자’가 되리라고 생각하는 수용자 개인들이 존재한다.(제3자 효과) 이 개인들은 그 음란물을 보여주는 텔레비전에 의해 관념 속 타인들을 만드는 수동적 존재이며, 동시에 그들이 관념에서 만든 타인들 역시 음란물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잠재적 성범죄자들’이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탄환효과 이론의 무기력한 수용자들은 이렇게 7,80년대 이론의 안과 밖에서 두 번 부활한다.

  위 이론들을 만들고 검증해온 ‘이론가’들은 결국 무기력한 수용자라는 관념을 그들이 말하는 현실의 수용자- 아마도 그 이론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 -에게 투영하고, 그 현실의 수용자 개개인의 관념 속에 한 번 더 투영한다. 어쩌면 제3자 효과- “미디어의 효과는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나타난다” -는 그 이론을 만든 '이론가'의 자기 독백일 뿐이다. “매스 커뮤니케이션을 모르는 너희들은 그렇게 되겠지만 전문가인 나는 그렇지 않다. 나는 이론가이다.” 바로 여기서 관념의 무한한 투영이 벌어진다. 이론가의 관념은 이론에 투영되고 이론 속 주인공에 투영되며 그 주인공의 관념에까지 투영된다. 이 끔찍한 동어반복(tautology)이야 말로 헤겔이 그토록 거부한 악무한(vicious circularity)이자 자본주의 고유의 이데올로기기다.

  여기서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관념 속 타인들이 아닌 실제 타인들은 나와의 ‘현실적 관계’ 속에서만 존재하며, 그렇기 우리 모두는 이 관계를 떠나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이 이론들은 내가 날마다 일상에서 부딪히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타인’이 아니라, 거꾸로 ‘관념 속에서 먼저 타인들이 만들어지고 이로부터 그들과 나의 관계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관념 속의 ‘잠재적 성범죄자’는 나로 하여금 그들을 통제할 ‘방영금지’와 ‘특별법’을 지지하게 만들어 현실적 관계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회적 관계는 현실이 아니라 개인의 관념에서 시작되어 만들어지는 셈이다. 결국 이 이론들이 말하는 유일한 현실적 관계는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라 거역할 수 없는 사물(thing)인 매스미디어와 수용자 개인의 관계이며 이로부터 타인과 나의 관계가 만들어진다. “생산자들의 사회적 관계를 그들 외부에 존재하는 관계 즉, 물건들의 사회적 관계로 보이게”하는 물신성(fetishism)은 맑스의 <자본론>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몇 십 년 동안 대학 강의실에서 소개된 이 효과이론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2007년 1학기 <커뮤니케이션 이론> 강의노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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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이 의미하는 ‘반복되는 자연’은 갈수록 상징 속에 표현된 항구화된 사회적 억압임이 증명된다. 움직이지 않는 형상으로 대상화된 ‘전율’은 특권층의 확립된 지배를 표시한다. 이렇게 확립된 지배는 ‘형상적인 것’을 모두 포기하더라도 보편 개념으로 남게 된다. 학문의 연역적 형식마저도 위계질서와 강압을 반영한다. 첫 번째 범주들이 개개인에 대한 조직화된 부족과 그 부족의 힘을 대변한다면 개념들의 전체적 논리 질서, 의존성, 연결, 포괄 그리고 연합은 노동 분업을 토대로 한 사회의 현실구조를 반영한다. 물론 사유 형식의 이러한 사회적 성격은 뒤르켐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사회적 연대감의 표현이 아니라 사회와 지배가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는 증거이다. 지배는 사회 속에서 확립된 것이지만 또다시 사회 전체에 한 차원 높은 일관성과 힘을 부여한다. 지배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면서 만들어낸 노동 분업은 지배받는 전체의 자기유지에 기여한다. 전체는 전체로서, 또한 전체에 내재한 이성의 활동으로서, ‘파편적인 것’의 집행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이 된다. 개별자에 대해 ‘지배’는 보편자로서, 현실적 이성으로 등장한다.

Th. Adorno & M. Horkheimer, 김유동 옮김(2001),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 지성사. 49~50쪽

#1
각종 사회과학 세미나를 ‘받던’ 대학 시절, 무슨 세미나를 하고 싶냐는 선배들의 질문에 몇몇 동기들은 경제학이니 철학을 말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뭔가 저 높은 곳에 있는 왕좌에 도달하면 나머지 과목들― 역사, 민족, 페미니즘 등등 ―은 그 아래 머리를 조아릴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2
대학원 논문 제안서 심사장.
워낙에 친분도 고르지 않고 전공도 다른 교수들이 모인지라, “무슨 주제로 어떻게 쓰겠다.”고 말하는 발표자에게 제일 만만한 질문은 “방법론이 뭐냐?”이다. 논문의 제목이 무엇이건, 일단 이 질문으로 포문을 열면 학생들의 십중팔구는 양적/질적(Quantitative/Qualitative)의 두 형용사를 배회하다 “정정하겠습니다.”로 백기 들고 내려온다. 설명하는 방식(How to explain)이 설명되어야 할 것(the explained)을 결정함을 깨달은 영특한 몇몇 대학원생들은 ‘방법론’이라는 험난한 길을 떠나고 급기야 사회학, 과학철학, 철학으로 전과를 하겠다는 학생들도 생긴다.

#3
꽤 오랫동안 특정 분야의 이론들은 자신이 대상으로 하고 있는 연구영역 또는 대상의 정당성을 그 이론 외부에서 인정받으려 했다. 다양한 분과의 ‘과학’들은 자신들의 근원을 늘 저 고대 그리스에 두었고, 그리스 철학의 후계자들에게서 자신들의 연구방법과 대상의 정당성을 발견해왔다. 마르크스주의 역시 “정치경제학의 방법”이라는 마르크스의 그 짧은 글에서 실로 무수한 변증법의 도식과 유물론을 이끌어 냈다. 그리하여 다양한 마르크스주의 분과들이 알현해야 할 “역사적 유물론”이라는 왕좌가 탄생했다.

#4
아도르노가 “보편자”, “현실적 이성”라고 말한 지배의 형태는 이런 식으로 도처에서 나타났다. 저 높은 곳에 위치한 왕좌를 극점으로 논리적 위계질서가 피라미드처럼 세워졌다. 대기업의 조직도가 이런 사유형식과 동일한 모양을 취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의 조직도와 사회조사방법론 서론의 연구모델은 ‘노동 분업을 토대로 한 현실구조’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이런 까닭에, 좌파건 우파건, 마르크스주의건 신고전파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지배를 스스로 만들어 왔다.

#5
한 대학원 후배가 이번 학기 어떤 과목을 들을까 고민하다 ㅁㅎㅋㅌㅊ학과의 강의계획서를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견학과 토론이 격주로 진행되는 ‘흥미진진’한 강의도 있고 와인 하나로 16주를 채우는 강의도 있다. 언젠가 부터 새로운 전공과 이름도 생경한 학과들은 학문의 논리적 위계질서를 내세우지도 않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보할 ‘왕좌’를 만들지도 않는다. 도리어 학문의 피라미드에서 그 왕좌에 계셨던 분들이 앞장서서 그런 위계질서를 깨고 계시니, ‘실용분과’에서 공부하는 나 같은 풋내기가 나서서 뭐라 할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왕좌는 없어졌고 이 새로운 전공들은 학문의 위계 속에서 자유로워진 것일까? 한 때 철학이 앉았던 그 자리에 이젠 “평등한 계약당사자들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지는 <시장>”이 들어서지 않았는지. 이 <시장>은 ‘학문’이나 ‘이론’ 아니라며 자신의 무고함을 토로할지도 모른다. 맞다. <시장>의 변명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론과 현실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지배적인 관념은 언제라도 지배적인 물질적 힘으로 전화할 수 있다는 오래전 마르크스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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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1. 7.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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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나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허무주의적인 것은 바로 체계의 현실이다. 즉, 모든 가치의 폐기와 혼돈과 무차별화가 허무주의라면, 그것을 작동시킨 것은 체계다. 예컨대, 오늘날에는 자본마저 가치를 희생시킨다. 가치의 저 너머에서 순수한 투기에 몰두하는 것이다. 정치는 대표성(représentation)의 가치를 희생시킨다. 그것은 더 이상 대표성의 합리적 체계가 아니라, 전략에 불과하다. 우리는 실재를 희생시킨다. 허무주의는 사실상 체계 자체다. 우리가 명민하게 이 허무주의를 분석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허무주의가 아닐 것이다. 사람들은 늘 메시지와 메시지 전달자를 쉽게 혼동한다. ‘허무주의에 관해 말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허무주의자군’, 혹은 ‘체계를 분석하는 것을 보니, 당신은 체계의 편이군’ 이런 식이다. 그런 말들은 전혀 흥미롭지 않다. 이는 대상에 대한 도덕적, 심리학적인 가치판단인데,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은 것이다.”

“장 보드리야르와의 대담” 이상길, <프로그램/텍스트>, 2005년 12호. 188쪽.

  보드리야르의 책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의 제목은 “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이다. 이거 제목부터 좀 어렵다. 이 제목은 “기호학을 통한 정치경제학 비판”으로도 읽을 수 있고, “기호로 구성된 정치경제를 비판”한다는 의미로 읽을 수도 있다.
  몇 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보드리야르의 방법론에 대한 글을 쓰라는 말을 들었다. 저 책 제목을 가지고 생각해 보면, 그 때의 요청은 정치경제학을 비판했던 보드리야르의 “기호학”을 정리해 보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만일 보드리야르의 작업이 “기호를 비판”하려는 것이었다면, 그 과제는 전혀 엉뚱한 요청을 한 셈이다. 기호학 방법론을 정리한다는 것은 보드리야르가 비판하려던 대상을 묘사하는 일일 뿐이며, 그 대상의 묘사는 이데올로기를 판단하는 “과학”으로 오인되기 때문이다. 더욱 나쁜 일은 그 대상에 부여된 가치판단이 배제되어 버린다는 사실이다. “메시지와 메시지 전달자를 혼동”하고 있다는 보드리야르의 말은 정확히 이런 촌극을 가리킨다. 그의 말을 조금 바꾸자면 “비판의 대상과 비판 그 자체를 혼동”하고 있는 셈이다. 신문방송을 전공한다고 해서 내가 신문방송학자가 되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Posted by WYW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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